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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시골뜨기의 고향 노래

어느 시인의 말처럼 '단 하루가 지나갔을 뿐인데' 9월의 공기가 사뭇 다르다. 어디로 떠나고 싶어지면 가을이라 했던가.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넓은 시골 들녘. 들길 따라 핀 코스모스와 햇살에 익어가는 벼 이삭, 도시에서 태어나서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도대체 이런 연상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시골에 대한 그리움은 종종 노래가 되어 우리의 향수를 강하게 자극한다.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되는 이은상의 '가고파'가 그렇고,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고향의 정경을 생생하게 노래한 정지용의 '향수'도 그렇다. 두 곡 모두 끝을 "꿈엔들 잊힐리요"로 맺는 걸 보면 사람과 장소는 달라도 고향의 애틋함은 마찬가지인가보다. 결핍된 무엇을 찾아 떠났건만 고향은 그렇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풍경으로 남는다.

시골에 대한 향수에는 동서양이 따로 없다. 대중음악의 주요 장르인 컨트리 뮤직은 말 그대로 미국 '시골'에서 즐기던 음악이다. 미국 식민지 개척 초기 유럽 이민자들이 정착한 곳은 애팔래치아 산맥 주변의 거친 황야와 들판. 낯선 신대륙에서 황무지를 일구어야 하는 이민자의 삶은 고될 수밖에. 그들에게 유일한 낙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가족이나 마을 단위로 모여 부르던 고향 노래, 바로 컨트리였다.

컨트리는 곡조는 물론이고 가사도 소박하기 그지없다. '스위트 홈'에서 별 탈이 없이 살다가 기쁨이 넘치는 천국에 가는 것이 이들의 소망이었으니까. 싸구려 피들과 밴조의 단순한 반주에 맞춰 비음 섞인 발성으로 투박하게 노래하는 시골음악. 도시 사람 눈에 얼마나 촌스러웠으면 장르 이름도 힐빌리(hillbilly), '시골뜨기'라고 붙여졌을까. 이젠 당당하게 많은 미국인이 즐기는 대중음악이 되었지만, '컨트리'라는 새 이름을 얻기까진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노래 속의 시골은 언제나 정겹고 아름답다. 얼룩빼기 황소가 게으른 울음을 울고, 초라한 지붕 밑 흐린 불빛 아래 도란도란 가족들이 속삭이는 곳. 파란 바다와 물새 그리고 어릴 제 같이 놀던 동무들이 있는 곳. 마운틴 마마가 이어지는 웨스트버지니아, '컨트리 로드, 테크 미 홈'에선 그곳이 천국이란다. 그러니 팍팍한 도시 생활이 부러울 리 없다. 남들이야 촌놈이라 놀리든 말든 그래서 존 댄버는 자랑스럽게 노래한다. 나는 시골 놈, 컨트리 보이라고. 그래서 감사하다고.

그러나 기억은 왜곡되고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 이 세상에 아름답기만 한 천국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의 시골 역시 향수나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시골 삶이 풍족했던 때가 언제 있었으랴만, 그래도 지금처럼 도농 간 격차가 큰 적은 없는 듯하다. 가난한 시골에선 이제 인심도 옛말이다. 시골 인구는 해마다 줄어들고 그나마 남은 이들은 모두 노인이다.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면 시골 자체가 사라지지 않을까.

며칠만 지나면 추석이다. 각인된 향기를 따라 먼 길을 돌아가는 연어들의 행렬처럼, 그렇게 많은 이들이 잊고 있던 추억을 그리며 고향을 찾아가리라. 이보다 감동적인 회귀가 또 있을까. 맘껏 명절을 즐기고 새롭게 충전 받기를. 그리고 고향 땅과 친지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었으면. 위대한 고향도 때로 위로가 필요한 법이니까.


민은기 / 서울대학교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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