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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순 칼럼]봄맞이, 내 삶을 여일하게 이끌 희망 등!

연일 비가 내린다. 우중충한 하늘을 이고 공기 중에 습기가 흥건해도 마음은 산뜻하다. 완연한 봄을 몰고 올 비라서 그지없이 반가운 것이다. 계절 중에 봄이 오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데, 입춘 지나기 무섭게 조지아 산천에 봄이 슬금슬금 내린다.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가 낼 모래, 분홍빛 매화 꽃망울이 펑펑 터지고 푸른 기운을 머금은 새순이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서 툭툭 불거지는 걸 보니 와락 조급함이 달려든다. 겨우내 방치했던 꽃밭을 단장해야 얼어붙은 내 영혼에도 사뿐사뿐 봄이 찾아올 테니까!

내달리던 바람 속에서 봄 냄새가 나던 날 마트에서 알뿌리 화초들을 한 아름 사 왔다. 올해는 내가 좋아하는 꽃들을 정원에 가득 심고 꽃 기운으로 보람 있는 일을 많이 할 양이다. 모란, 백합, 달리아, 칸나, 꽃나무로 사려다가 알뿌리로 샀다. 들뜬 가슴을 지그시 누르고 고슬고슬한 봄 땅을 고르고 알뿌리를 같은 것끼리 경계 지어 마음껏 심었다. 제각각 봉지에 들어있는 양이 어찌나 많은지, 꽃이 피면 볼만하겠다. 비좁은 정원에 여럿이 모였다. 동백, 수국, 장미, 단풍나무, 새로 심은 알뿌리 꽃들까지. 그러고 보니 내 유년의 고향집 같다. 한 지붕 아래 형제자매가 옹기종기 모여 우쭐우쭐 커가며 꿈을 꾸었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아, 한나절을 바친 노동의 대가가 뿌듯하다. 올봄 싱그럽게 온몸을 쑥쑥 밀어 올려 지혜를 선물할 꽃들이라니. 계획했던 일들이 착착 진행되지 않으면 안절부절,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출렁거릴 때마다 내게 정금 같은 일침을 쏘아줄 테지! “제발 두리번거리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두세요.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마음을 두어야 그곳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어요. 마음을 두어야 피가 돌고 그곳에서 꽃이 피는 거예요.”

요즘 엉덩이가 들썩거려 책상 앞에 좌정하지 못하고 뜰을 서성거린다. 매년 겨울이 물러가는 이맘 때 도지는 병이다. 어두운 땅을 뚫고 꼬물꼬물 생명이 올라오는지 살피느라 앞뒤 뜰을 들락거린다. 우후죽순 날마다 고개를 쳐들고 쑥쑥 올라오는 새싹들! 연둣빛 새순과 눈맞춤하며 교감하다 보니 복잡한 머릿속이 말개지고 눈이 시원해진다. 군데군데 터를 잡은 잡풀을 뽑아내고 웃자란 단풍나무 가지들을 싹둑싹둑 쳐냈다. 깊게 뿌리내리고 튼튼하게 자라 기품이 서린 큰 나무가 되라고. 봄맞이 의식으로 꽃을 심고 꽃밭을 손질하는 동안 가슴이 울컥했다.



생존의 불안이 주는 어지럼증이 이만저만이 아니던 시절, 만수산 드렁칡처럼 꼬인 일들을 끌어안고 출구가 안 보이던 그 시절,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의외로 소박한 일이었다. 정원에 꽃을 심고 한 평도 안 되는 텃밭에 씨를 뿌리고 생명을 키우는 일상이었다.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목도하면서 겸허를 배웠고 비워내는 것을 배웠고 기다림을 배웠다. 그러고 나니 평안함이 찾아왔다.

며칠 전 운동하다가 이민 초기 마음을 풀어놓고 지낸 친구를 만났다.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란다. “고등학생인 아들이 도통 말을 안 듣고 애를 먹이는데…” 슬하에 남매를 두고 자녀교육에 지극정성인 그녀의 삶을 잘 알기에 가슴이 저렸다. 딸은 모범생으로 유수 대학에 진학하여 장학금을 받으며 제 삶의 자리를 잘 찾아가는 중이라니, 한 가지에서 나고 자라도 각양각이한 모양새로 어른이 된다. 신의 섭리다. 기실 꽃밭에 심은 꽃씨도 그렇다.

한날 한곳에 심었다고 모두 꽃이 되는 것도 아니요 일제히 피는 것도 아니다. 제때 피는 꽃, 뒤늦게 싹을 틔워 시난고난, 저게 꽃이 될까 싶은 것도 있다. 결국 사나운 비바람에 휘청거리고, 폭염에 시르죽어 있다가 서리를 맞고야 꽃을 피워 제 하늘을 여는 늦둥이도 있더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도 없고 젖지 않고 피는 꽃도 없다. 사람이고 꽃이고 제각각 때가 있더란 말이다.

봄 냄새와 더불어 내 삶의 궤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덩달아 삶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뇌리를 관통한다. 잘 살아야겠다! 이 세상 소풍 끝내고 삶을 갈무리 할 때 ‘어영부영하다 보니 인생 끝났다’는 불상사는 만들지 않아야지. 봄맞이를 하다 보니 겨우내 얼어붙은 영혼에 화등이 켜진 양 가슴에 온기가 돈다. 한나절을 바쳐 심은 꽃들이 올 한해 내 삶을 여일하게 이끌 희망등이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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