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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의 시민권 미국 역사-7]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7> 20세기 주요 전쟁

20세기는 '미국의 세기'이고 미국 역사가 곧 세계 역사였다.

1940년대 미국 인구는 세계 인구의 7%에 지나지 않았지만 경제력은 압도적이었다. 세계 자동차의 70%, 전화의 50%, 라디오의 45%, 철도의 35%를 갖고 있었다. 또 석유의 59%, 커피의 53%, 고무의 50%, 설탕의 25%를 소비하고 있었다. 이런 풍요의 이면에는 역설적이게도 전쟁이 있었다.

미국 이민국 발행 시민권 시험 예상 문제집에는 20세기 미국이 치른 주요 전쟁과 관련된 문항이 5개나 나온다(아래 문제 풀이 참조). 미국이 참전한 20세기 주요 전쟁을 살펴본다.





#. 1차 세계대전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부부가 두 발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 세르비아 독립운동에 가담한 청년의 거사였다. 곧 오스티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를 공격했고 뒤이어 독일이 뛰어들었다. 이탈리아가 독일편에 섰다. 터키(오스만투르크)도 이들 삼국동맹 편에 가담했다. 영국-프랑스-러시아는 3국 협상으로 맞섰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우드로 윌슨. 남북전쟁 이후 최초의 남부 출신 대통령으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했던 이상주의자였다. 그는 대서양 건너 '유럽전쟁'에 중립을 지키고자 했다. 하지만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 미국 선박이 위협받고, 결정적으로 여객선 루시타니아호 침몰로 미국인 120여명이 숨지자 더 이상 중립에 머물 수 없게 됐다. 거기에 '치머만 전보 사건'까지 터졌다. 미국이 참전할 경우 멕시코가 독일 편에 서 준다면 전쟁이 끝난 뒤 텍사스와 애리조나 등 미국에 빼앗긴 땅을 되돌려 주겠다며 독일이 멕시코에 비밀리에 보낸 전보가 발각된 것이다.

1917년 4월, 결국 윌슨은 참전을 선언했다. 당시 미국 정규군은 고작 22만 명, 주 방위군 45만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즉각 징병제를 실시하고 200만 명의 군대를 유럽에 파병했다. 밀리던 연합군은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했고 1918년 11월, 마침내 연합국 승리로 전쟁은 끝이 났다. 이 전쟁으로 1000만 명의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 뒤늦게 참전한 미군도 전사자 5만3000명을 포함해 11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전쟁 후 미국은 육해공군 합쳐 500만 명의 군대를 가진 세계 최대 군사대국이 되었다. 윌슨은 평화 14개 원칙을 발표했다.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세계 질서를 재편하겠다는 야심이었다. 하지만 국제정치라는 현실의 벽은 높았다. 윌슨은 국제연맹 창설을 주도했지만 정작 미국은 참여하지 않았다. 전쟁의 모든 책임을 떠안은 독일의 불만은 갈수록 커졌다. 더 큰 세계 전쟁이 기다리고 있음은 그때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 2차 세계대전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다. 이틀 후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이탈리아와 일본이 독일과 보조를 맞췄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전격적으로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했다. 미군 병사 2400명이 수장되고 149대의 전투기와 주요 항공모함, 전함들이 태평양에 가라앉았다. 그 다음날 미국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 삼국동맹에 따라 사흘 뒤 독일과 이탈리아가 미국에 선전포고 했다. 미국은 제2차 대전의 핵심 당사국이 됐다.

미국 주도의 연합군은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유럽에서 일거에 전세를 역전시켰다. 태평양 전선에서도 초반 열세를 극복하며 일본을 수세로 몰아 세웠다. 때마침 '맨해튼 프로젝트'로 핵 개발을 끝낸 미국은 1945년 8월 인류 최초로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잇따라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다. 그 전, 1945년 4월, 무솔리니가 붙잡혀 처형되고 히틀러도 자살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2차 대전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군인, 민간인 합쳐 5300만 명이나 됐다. 미군은 30만 명 가까이 전사했고 70만 명이 부상당했다.

대공황을 이겨내고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루스벨트 대통령은 '위대한' 4선 대통령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 뒤를 이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2차 대전을 종결지었지만 인류 최초의 핵 폭탄 투하 결정을 내린 대통령이라는 '멍에'를 쓰게 됐다.

#. 한국전쟁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맺어지기까지 3년 1개월 2일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 전쟁을 민주주의에 대한 공산주의의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1950년 7월 19일 참전을 결정했다.

한국전 기간 동안 178만 명의 미군이 투입됐다. 태평양전쟁 때보다 50만톤이 많은 폭탄이 투하됐다. 북한 지역은 멀쩡한 건물이 없을 정도로 초토화됐다. 미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미군 사망자는 총 5만4260명이었다. 이중 전사자는 3만3643명, 나머지는 질병이나 사고 등에 의한 희생자였다. 한국 국방부에 따르면 한국군 사망자는 13만 8000명이었다. 북한군은 52만명, 중공군은 13만 6000명이 죽었다. 민간인 사망자는 남북한 합쳐 53만 명이 넘었다. 이렇게 큰 희생을 남긴 전쟁이었지만 미국에서 한국 전쟁은 곧잘 잊혀진 전쟁으로 불린다. 일반 역사책엔 이상하리만치 한국전쟁에 대한 언급이 적다.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도 한국전쟁을 소개한 지면은 많아야 한 두 페이지다.

#. 베트남전쟁

워싱턴 DC 베트남전 기념관엔 매년 2000만 명의 참배객이 방문한다. 베트남에서 전사한 5만8000명의 미군 이름이 새겨져 있는 곳이다. 그들은 자신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먼 아시아 국가에서 희생된 아버지, 삼촌, 형제, 아들의 이름을 어루만지며 꽃을 바친다.

베트남전쟁의 뿌리는 복잡하다.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 맞서 싸운 베트남은 1954년 마침내 프랑스를 몰아냈다. 제네바협정이 맺어졌고 한반도가 그랬던 것처럼, 베트남을 남북으로 분할하되 2년 안에 선거를 통해 통일 국가를 세우기로 했다. 하지만 미국이 반대했다. 냉전이 한창인 상황에서 동남아의 공산화 도미노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급기야 미국은 통킹만에서 미국 선박이 먼저 공격 받았다는 이유로(훗날 조작, 날조됐음이 밝혀졌다) 북베트남을 폭격했다. 베트남전쟁의 전쟁 시작이었다.

미국에게 베트남은 수렁이자 굴욕이었다. 2차 대전 때 유럽과 일본에 투하한 것보다 2배나 많은 폭탄으로 베트남을 초토화시켰지만 베트콩 게릴라들의 저항의지를 꺾지 못했다. "어떻게든 이런 미친 전쟁은 끝내야 합니다." 반전시위가 전국적으로 물결을 이루었다.

1968년 음력 설 대공세로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은 베트콩의 수중에 넘어갔다. 사실상 승패는 결정됐다. 1973년 종전협정인 파리협정이 맺어졌고 미군은 철수했다. 2년 뒤, 월남은 완전히 패망했고 베트남은 사회주의 베트남으로 통일됐다.

#. 페르시안 걸프전쟁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기습 침공, 점령하자 유엔 결의에 따라 미국·영국·프랑스 등 34개 다국적군 68만 명이 이라크를 공격했다. 주력은 43만 병력의 미군이었다. 이들은 패트리엇 미사일, 스텔스 폭격기 등 최첨단무기와 압도적 화력으로 이라크군을 무력화시켰다.

전쟁은 42일간 계속됐다. 폭격 장면은 TV로 생중계됐다. 이라크군은 10만 명이 죽었다. 다국적군은 378명이 전사했다. 미군 희생자는 150명이었다.

#. 전쟁, 누군가는 남는 장사

따지고 보면 미국만큼 전쟁이 '체질화 된' 나라도 없다. 미국은 전쟁을 통해 나라를 세웠고,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혔으며 전쟁을 통해 초강대국이 되었다. 1776년 독립 선언 이후 지금까지 240여년 동안 공식적으로 전쟁을 치르지 않은 해는 채 30년이 안 된다. '영구 전쟁국가'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23년간 미 육군 장교로 복무한 앤드루 바세비치는 '워싱턴 룰-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박인규 옮김, 2013년 발간)라는 책에서 이렇게 진단한다. '미국은 그들만이 세계를 이끌고 구원하며 궁극적으로 변형시킬 임무와 특권을 갖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런 신념은 미국이 개입하는 온갖 전쟁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르면서도 미국이 결코 전쟁을 중단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누군가는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는 바세비치의 지적이 아니어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들은 정부 관리, 거대 방위산업체와 대기업, 그리고 그들을 위한 로비스트, 군 장교, 여러 국가안보기구의 요원, 언론인, 대학과 연기기관의 정책 전문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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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권 시험 예상문제 풀이

▶문:1900년대에 미국이 참전한 전쟁 한 가지만 말해 보라.(Name one war fought by the United States in the 1900s.)

답:수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모범 답안으로 제시된 것은 다음 5개다. 세계 1차대전(World War I), 세계 2차대전(World War II), 한국전쟁(Korean War), 베트남 전쟁(Vietnam War), (페르시안)걸프 전쟁(Persian Gulf War).

▶문:세계 1차대전 기간 중 대통령은 누구였는가?(Who was President during World War I ?)

답:28대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이다. 1913년부터 1921년까지 재임했다.

▶문:대공항과 2차대전 기간 중 대통령은 누구였나?(Who was President during the Great Depression and World ar II?)

답: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다. 미국 유일의 4선 대통령으로 1933년 임기를 시작, 1945년 4월 독일 항복을 목전에 두고 사망했다.

▶문:세계 2차대전에서 미국은 누구와 싸웠는가?(Who did the United States fight in World War II ?)

답:1940년 삼국동맹을 맺은 추축국(樞軸國, Axis powers) 세 나라 일본(Japan), 독일(Germany), 이탈리아(Italy)와 싸웠다. 독일은 아돌프 히틀러, 이탈리아는 베니토 무솔리니, 일본은 쇼와(昭和) 천황 히로히토가 이끌었다.

▶문:대통령이 되기 전 아이젠하워는 장군이었다. 어느 전쟁에 참전했는가?(Before he was President, Eisenhower was a general. What war was he in?)

답:세계 2차 대전(World War II)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후 1953년부터 1961년까지 34대 대통령을 지냈다.


이종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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