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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모국어 강습

비디오테이프로 한국 연속극을 보던 때가 그렇게 오래전 일은 아니다. 이제는 드라마는 물론 셀 수 없이 많은 오락.다큐.시사 뉴스 등이 인터넷으로 실시간 우리의 안방으로 들어왔다. 70~80년대의 고단한 이민생활에서 모국의 드라마는 돌아가지 못하는 그곳의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안아주는 위로제(?)의 역할을 하였다는 생각이다.

한 작품의 분량인 25회분 테이프를 몽땅 빌려서는 며칠 사이에 다 보는 분이 종종 있기도 하였다. 수면부족으로 그 다음날의 일에 지장을 주었을 것임은 분명한 일이다. 우리도 한국에서 방문오신 시고모님을 위하여 처음으로 2회분의 테이프로 시작을 하였는데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한 작품을 다 보았던 적이 있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엄청난 분량인데 모국어의 편안함과 두고 온 문화에 대한 결핍증 같은 심리인지 참으로 달콤한 유혹이 있었다.

나와 같이 살던 옛 동네의 지인은 유난히 드라마를 즐겨서 고정적으로 두어 개를 빌려오곤 하였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남편이 "지금부턴 비디오 절대 보지마. 어디 할 일이 없어서 테이프 앞에서 멍청히 세월을 보낼 것인가!"라는 극단적인 지청구까지 들어야 했었다. 그래도 몰래 빌려와서는 "남편이 외출하면 본다"고 하니 미국 생활을 더 오래 한 어느 친구 왈 "비디오 드라마가 정신과 의사 보다 훨씬 싸게 먹히니 계속 하시라"고 조언을 하기에 같이 크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나도 이젠 은퇴를 하여 시간이 조금 느긋해지고 때 맞추어 인터넷으로 쉽게 이것 저것 골라서 클릭만 하는 때가 왔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차를 타고 비디오가게를 가야 되었던 일은 나의 손자.손녀세대는 물론 모르는 일이다.



요즈음 나의 일상은 일일연속극과 주말 드라마 하나를 부지런히 챙긴다. 아니 꼭 빠지지 않고 보고 싶은 게 사실이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시간이 무척 기다려지는 수준이니 중독성이 다분히 생긴지도 모른다. 남편이 듣는 TV가 시끄러워 나의 랩톱에다 이어폰을 끼고서 드라마 삼매경에 빠진 채 마시는 아침 커피는 더 꿀맛이다. 나머지 조반도 술술 잘 넘어가니 소화가 잘됨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최근 한류의 열풍에 힘입어 한국드라마, 케이팝 등은 국경과 민족이나 인종을 초월해 사람들이 함께 감동하고 즐기는 문화가 되고 있음도 현실이다. 한국문화를 접하면서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식 옷차림을 따라 하고 한국식당을 찾는 것은 이런 부류의 사람에겐 자연스런 일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외국인에게는 한국어는 경쟁력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한국사람들이 영어를 잘하면 경쟁력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언어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국제적 웹사이트인 '에스놀로그'에 한국어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많이 쓰이는 언어의 순위에서 13번째라고 한다. 더구나 외국인들이 한국어 학습에서 빼놓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 한국드라마를 보면서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며칠 전 이곳의 큰 행사인 오스카상 수상식이 있었는데 그 다음날 신문기사를 보고 "아! 내가 이 큰 프로그램까지 보지 않았구나!"하는 맘으로 그 시간에 내가 시청한 한국 드라마 장면을 떠올려 보기도 하였다. Oscar Night을 놓친 그 일은 지금 내가 두어 달 째 푹 빠져있는 한 시간 짜리 주말연속극을 보다가 생긴 이변(?)이다. 하지만 큰 후회는 하지 않으려 한다. 타향살이가 길어질수록 모국어에 대한 거리감과 두고 온 문화에 대한 향수가 깊어져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에게 한국드라마는 '모국어 연습장'이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꾸준히 계속하려고 한다 넓은 의미의 귀소본능인지도 모른다.


김옥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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