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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TALK] 기대, 혹은 실망

몇 년 전 성악가 A와 가졌던 음악회에서 겪은 일이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연주는 어느덧 2000여 청중들의 큰 환호와 함께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무대와 백스테이지를 여러 차례 오가며 감사의 인사를 이어갔지만 열기는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A와 무대 뒤로 함께 돌아와 마지막으로 어떻게 할지를 급하게 상의했다. "무반주로라도 앙코르를 해야겠어요!" 그는 미리 준비한 듯, 깨알같이 가사가 적힌 명함 절반 크기의 쪽지를 손에 쥐고 무대로 향했다. 그러더니 자연스러운 손동작을 곁들이며 놀라운 시선처리 기술로 앙코르를 불렀고, 관객들의 떼창까지 유도하며 유유하게 곡을 마무리했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초특급 피아니스트 B가 중부의 한 오케스트라를 찾았다. 그는 연습실을 떠나지 않았고 마치 입시를 앞둔 수험생처럼 연습에만 몰두했다. 관객을 몰고 다니는 천재 피아니스트가 음악회를 코앞에 두고까지 저렇게 치열하게 집중한다는 사실이 의외였다. 그런데 잠시 숨을 돌리던 B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필자는 그 이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 이거요? 여기 오기 직전에 도서관에서 빌린 악보라서 지금 열심히 익히고 있어요. 이번에 처음 연주하는 곡이라 내일까지 악보 외워야 하는데… 잘 되겠죠, 하하!"

초청 연주자라면 연주할 곡목에 대해 사전 숙지는 기본이요, 이미 수 차례 연주 경험까지 갖추고 있을 법한데, 지금에서야 악보를 익히고 있는 그의 모습이 놀라웠다. 일반적으로 주말 2~3일간의 음악회를 위해 첫 연주 전 1~2회 정도 함께 맞춰보는 리허설을 갖는다. 그래서 일단 리허설이 시작되면 비교적 일정이 여유 있는 편인데, 처음 보는 곡을 외우고 있는 중이라니… OMG.

성악가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세기의 테너 C는 악보를 읽을 줄 모른다는 소문이 있다. 직접 만나 확인해보지 않았으니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주변에 곡을 익힐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전문가가 있고 악보를 보는 대신 귀로 듣고 작품을 소화한다고 전해진다. 그가 섰던 셀 수 없이 다양한 무대와 남긴 수많은 음반에서 불렀던 노래들이 악보 없이 이룬 것이라면 이 또한 놀라움이다.



유럽의 한 유명 악단의 투어 관련해서 얼마 전 한국에서 화제가 된 공연리뷰 기사를 접했다. 기대와는 달리 무성의한 연주에 대해 분노와, 연주자의 명성에만 기대 묻지마 갈채를 보낸 일부 청중들에 대한 실망이 주된 내용이었다.

대륙을 건너는 긴 투어 같은 경우는, 모두가 기다리고 즐거워만 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단원들의 상당수가 돌볼 가정과 자녀가 있거나, 중요한 개인적 일정 때문에 집을 비우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건강상의 이유로 장거리 여행이 어려운 사람도 있고, 믿기 어렵겠지만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 때문에 투어에 자진해서 빠지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투어에 충원되는 대체 인력도 상당하다. 최상의 전력이 아닐 수 있다는 점도 문제지만, 짧은 기간 동안 바뀐 시차에 적응해야 하는 외적 어려움도 있다. 그리고 치열하고 긴장감 있는 태도로 새로운 관객들과 호흡하는 것보다는 해외여행이라는 잿밥에 관심이 많은 타성에 젖은 얄미운 일부도 존재한다. 불리한 환경에 휘둘려버리는 연주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기대가 실망감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은 하루아침이다.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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