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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스케치를 하고 있다

꽃은

바람 끝에서 살이 내리고

떼 지어 몰려드는 구름이 당당할 때는

비도 내리지만



춥고 허한 곳에도 시간은 살아있어 살 어름 녹여가고

옆구리의 숨구멍들은

회전하는 빛을 물고 그림자 지워간다



벌거벗은 겨울은 낮잠조차 햇볕 아래서 그리움 찬데

간간히

수평선의 거리만큼 먼 매력의 불속에서

지나간 나그네와 행인의 얼굴이 탄다



벌벌거리는 거리에서 누가 울고 갔는가

물 고인 자국에 얼음이 녹고 있다



정을 아는 꽃이 봄에 피듯

그리움을 아는 잎이 가을에 물이 들 듯

씨를 내리는 동물도 좌우로 길이 드는데

숨을 쉬는 것

그것이 삶이라면

겨울 같은 숨을 쉬어도 가슴엔 피를 감추고

존재의 가치를 아는 위아래를 우러르자

흙 묻은 거리에서 피 묻은 심장을 씻고

삶의 알몸을 털어 가벼워지는 그림을 그려가자


손정아 / 시인·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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