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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으로의 투자 "알 낳기 전 닭 잡아 먹는다"

북한 억류 김동철씨 인터뷰①

지난해 5월 9일 북한에서 석방된 김동철·김학송·김상덕의 귀환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마중을 나왔다. 김동철씨 등은 10일 새벽 메릴랜드주의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세 사람을 마중나온 트럼프 대통령이 비행기 안에서 김동철씨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김동철]

지난해 5월 9일 북한에서 석방된 김동철·김학송·김상덕의 귀환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마중을 나왔다. 김동철씨 등은 10일 새벽 메릴랜드주의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세 사람을 마중나온 트럼프 대통령이 비행기 안에서 김동철씨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김동철]

북, 초청 받아 투자 유치 나서
나선 경제특구 미국 첫 기업
이후 첩보 활동하다 발각돼


2015년 11월부터 북한에 억류돼 지난해 5월 9일 석방된 한인 김동철(62)씨가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17년 동안 북한에서 보고 느낀 바를 알리겠다며 본지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김일성 대학에서 명예 정치경제학·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시민권자로는 최초로 북한에서 기업을 설립·운영하며 함경북도 나선시 경제특구 외국인무역협회 지도부장, 해외동포사업처 외국인동포안내지도원 등을 역임한 그의 이야기를 전한다.

25일 플러싱에서 만난 김동철씨는 "이제 눈치 보지 않고 보고 느낀 것을 다 털어놓고 싶다"며 입을 열었다.

25일 플러싱에서 만난 김동철씨는 "이제 눈치 보지 않고 보고 느낀 것을 다 털어놓고 싶다"며 입을 열었다.

지난해 김동철·김상덕·김학송씨가 석방돼 귀환했을 당시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미국인들 대부분이 정상 생활로 되돌아오기까지 적지 않은 분노·불안·상실·죄책감 같은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25일 플러싱에서 만난 김씨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4시간 반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10번 넘게 북한에 대해 '애증'을 느낀다고 말했다. "더 이상 눈치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는 그에게 보복이 두렵지 않냐고 묻자 담담히 웃으며 "(수용소에서) 이미 한번 죽었다 나왔다"고 답했다.



2015년 김씨가 억류된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 지인들은 그가 북한에서 사업과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지만 그는 "선교는 마음으로만 했지, 북한에서 종교를 설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당시 상황을 밝혔다. 그는 "미국에서 만난 아내가 알고 보니 북한 주요 인물들과 가까운 배경이 있었다"며 "아내의 집안이 김일성과 함께 항일운동을 했던 인물과 연이 있어 북한에서 요직을 맡고 있는 이들과 관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처음 북한에 간 것도, 그곳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한 것도 북한 정부의 초청으로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북한 정권은 김씨에게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 경제활성화를 이끌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2001년 북한 통일전선부 참사(차관급 인사)와 만나 통일전선부 산하 해외동포사업처 업무를 제안 받았다는 것이다.

"첫 재판에서 사형 선고 받았다"
이후 15년, 또 10년으로 감형
"구금 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정보 제공 내용은 끝까지 숨겨"


"(처음에 북한 측은) 내가 평양에서 활동하길 바랬지만 평양은 깨끗할지언정 감시가 너무 심한 감옥 같은 곳이라 단독 기업을 세울 수 있는 경제특별구역인 함경북도 나선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는 그는 "2004년에는 나선시 동명 국제무역총회사를 설립, 사장직을 역임했으며 미국인 최초로 단독기업 승인을 받아 외국인 전용 두만강호텔을 설립해 운영했다"고 밝혔다.

2001년 처음 방문했을 당시 "아무것도 없고 삭막했다"던 나선에서 그는 "수산·기계조립·봉제 등의 산업 기반을 닦고 북한 제품의 수출 기로를 모색하는 한편 노동당 간부들을 안내해 중국에서 경제 시찰을 진행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나선시 경제특구 외국인 투자유치 위원장에 임명된 그는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중국에서 사업설명회나 투자설명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 특성상 모든 사업이 정부와 합작으로 이뤄지기에 투자자들의 단독 사기업 설립 요구 등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투자가 무산되기도 했다. 그는 "(북한으로의 투자는) 닭을 키우면 알을 낳아야 하는데 알을 낳기도 전에 잡아먹는 것과 같다"며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북한 주민을 상대로 장사하고 싶은 보따리 장사꾼이 많았고 큰 자금을 유치하는 것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동철씨는 '최고 존엄 모독죄' 및 첩보 활동 혐의로 2015년 10월 함경북도 나선에서 체포돼 지난해 5월 9일까지 31개월 동안 구금됐다.

"(미국과 한국 정부의 부탁으로) 북한의 동정을 살피고 정보를 전달하는 첩보활동을 하다가 발각됐다"는 그는 "미국 정부는 북한의 핵개발 등 군사력에 대한 정보를, 한국은 북한 정권 주요 인물의 동향 등 정세에 대한 정보를 원했다"고 밝혔다.

그는 "구금 후 6개월 동안 취조를 받는 동안 제일 힘들었던 점은 누구한테 어떤 정보를 제공했는지 발설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정작 구금되고 나니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풀려난 후 나와 보니 나와 연락하던 이들도 보직이 변경됐는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며 "그들도 사정이 있었을 테니 원망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제 내 할 바를 다 했으니 눈치보지 않고 할 말도 다 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억류가 보도됐을 당시 언론은 10년 노동교화형을 선고 받았다고 보도했지만 그는 "첫 재판에서는 사형을 선고 받았다"고 밝혔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사형에서 15년으로 감형됐고 최고인민법원에서 최종적으로 10년을 선고 받은 것.

"경제 개발에 대한 공로뿐 아니라 김정일이 아플 때 그를 위한 의료품 조달 등으로 표창을 많이 받았었다"는 그는 감형·석방 사유로 "아내의 집안이 김일성과 밀접한 관계라는 것도 한 몫 했을 것이고 잡히기 전까지의 공적이 많이 고려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김아영 기자 kim.ahyoung@koreadailyn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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