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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린의 문화 cafe]미국을 대표하는 에머슨 사중주단

[음악전문 기자 최예린의 공연리뷰]

신 들린 듯한 흡인력 갖고 신음이 새어나올 정도로 다이내믹하고 ‘아찔’

가장 미국적인 소리로 승부하는 에머슨 쿼르텟이 지난 2월 13일 오후8시, 밴쿠버 플레이하우스 무대에 섰다.
이들은 베토벤이 죽기 불과 몇 달 전에 완성한 마지막 현악사중주 작품 135번과 바르톡의 현악사중주 3번, 그리고 슈베르트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현악사중주 14번 ‘죽음과 소녀’ 등 고전과 현대의 이정표를 잇는 굵직한 선곡을 보였다.


1979년에 창단된 이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상을 받으며 줄기차게 정상을 향해 달려온 에머슨 사중주단은 올해 연주생활 30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클래식 최대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모폰에 전속된 지난 20년 동안 두 팔 가득 한 아름이 넘는 음반을 지속적으로 발매하며 무려 여덟 차례나 그래미 상을 석권하는 등 기염을 토했다.




이들은 명성 높은 줄리어드 쿼르텟에 이어 ‘미국의 자존심’으로 평가 받고 있는데, 특히 뉴욕 필하모닉,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함께 클래식 음악 거점이 유럽 중심에서 미국의 뉴욕으로 서서히 옮겨지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


비르투오조 적인 연주 스타일

기교적으로 완벽함의 경지에 다다른 명장 바이올리니스트나 피아니스트가 음악계를 휘어잡던 클래식 음악 전통을 두고, 우리는 흔히 비르투오조(virtuoso) 시대라고 부른다.
19세기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리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에 의해 절정을 이루었다.


이들의 연주는 귀신 들린 듯이 정확하고 신기하며 거의 곡예에 가까웠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악기를 다루는 기교적인 면이 매우 뛰어난 연주가를 가리켜 비르투오조 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종종 이 말은 개인기는 뛰어나지만 감정이나 표현력이 부족하고 과시적인 연주를 비판하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에머슨 사중주단의 연주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른바 전설의 명장(virtuoso) 스타일이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확하고, 신 들린 듯이 흡인력 있으며, 신음이 새어나올 정도로 다이내믹하고 아찔하다.
마치 운동회 달리기 시합에서 하얀 출발선에 한 발을 내딛고 초조하게 ‘땅!’ 신호를 기다릴 때처럼, 팽팽한 긴장감으로 인해 혈관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보통 실내악은 의자 몇 개를 나란히 잇대어 놓고 서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눈짓을 주고받으며 다소곳하게 연주한다.
비록 청중들은 무대를 마주보고 있지만, 역시 심리적으로는 그들과 의자를 맞대어 놓은 듯 편안한 마음으로 천천히 음악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에머슨 사중주단은 첼로 파트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연주자 모두가 줄곧 서서 연주한다.
이것은 마치 청중들 하나 하나가 그들 손에 들려진 작은 현악기 줄이 된 것만 같은 이색적인 일체감을 주었다.
그들이 한 획을 그을 때마다 몸서리가 쳐지고 현이 울듯 몸이 떨렸다.


특히 마지막으로 연주한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4악장은 엄청난 에너지와 스피드로 숨이 멎을 듯이 휘몰아쳤다.
꾸룩꾸룩 펌프질을 하다가 더 세게 더 빨리 하다가 마침내 폭포수 같은 물이 갑자기 콸콸 쏟아지는 것처럼, 이들의 활이 허공에 높이 쳐들어 올려지자 청중들은 발을 구르고 환호하고 우레와 같은 박수를 퍼부었다.


눈물 한 방울 없는 슈베르트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팽팽하게 밀고 올라가다가 마지막 음에서 화산처럼 분출시키는 엄청난 에너지는 에머슨 사중주단이 가지고 있는 큰 대중적인 장점이다.


이들 연주에 대한 비평가와 청중들의 의견은 한결같이 대단하다, 혈기왕성하다, 정력이 넘친다, 명료하고 간결하다, 차갑지만 투명하다 등등이다.
과연 연주 기법상 크게 흠잡을 것이 없다.
특히 실제 무대에서 청중을 몰입시키는 강인한 흡인력과 추진력은 가위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선배 격인 줄리어드 사중주단이나 알반베르크, 린지, 타카시 등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는 바로 그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해도 다 같은 스타일이 된다는 데 있다.
베토벤을 하든 바르톡을 하든 슈베르트를 하든 브람스를 하든 모차르트를 하든, 이들 손에 들어가면 다 같은 에머슨 스타일이 된다.


이번 공연을 보아도 역시 그렇다.
청중과 악기를 다루는 기교와 매너는 더 세련되어졌을지 모르지만 음악적인 깊이와 맛을 보기에는 여전히 아쉬웠다.
유머 없는 베토벤이요, 헝가리 맛 없는 바르톡이요, 눈물 한 방울 없는 슈베르트다.


이렇게 얘기하면 대단한 악평이 될 것 같지만, 이것이 사실 오늘 우리가 말하는 ‘미국적’이라는 말의 속뜻이다.
반짝반짝 윤을 낸 사과처럼 탐스럽고 먹음직스럽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퓨전음식처럼 입맛 돌게 하지만, 어쩐지 맛있고 영양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 그런 기분 말이다.
음악에도 모름지기 휴머니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에머슨 사중주단은?

1979년 창단 이래 가장 성공한 미국의 대표급 현악사중단으로 손꼽힙니다.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을 따로 정하지 않고, 유진과 필립 두 명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번갈아 제1 포지션을 맡습니다.


1987년 도이치 그라모폰에 전속된 이래 수많은 레코딩을 선보였으며,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합니다.
그중에서 특히 중요한 성과는 올해 2월 11일, 새 음반 ‘친근한 목소리(Intimate Voices- Grieg/Neilsen/Sibelius)로 모두 여덟 번째 그래미 상을 수상한 것이며,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16곡과, 바르톡 현악사중주 전6곡, 쇼스타코비치 현악사중주 전16곡 음반으로 모두 세 차례에 걸쳐 그라모폰 실내악 부문 최고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연주 스타일은 다이내믹하고 테크니컬하며, 클래식과 현대를 아우르는 전천후 연주가적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창단 30주년을 맞이하여, 오는 6월 모두 8차례에 걸쳐 뉴욕 카네기 홀의 전폭적인 후원과 지지 아래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움에서 베토벤 시리즈(Beethoven in Context) 마라톤 연주를 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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