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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수건 삼제 (手巾 三題)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두르신 수건으로 닦아 주기 시작하였다.’

손수건 선물은 이별의 상징이라고 연인들끼리는 주고받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휴지가 풍성한 요즘은 손수건의 수요가 적지만 요긴한 소지품의 하나이다.

2차 대전 말기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 당시 생필품이 부족한 시대를 살아 본 기성세대는 기억한다. 일제(日帝)가 공출(供出)이라는 이름으로 식량, 물자를 강제로 거두어 가던 시절 부모님들은 놋그릇을 뺏기지 않으려고 뒷마당을 파고 숨겨두던 장면이 기억난다. 일본은 전쟁 막바지에 가정에서 쓰던 놋그릇, 놋 세숫대야, 놋 요강, 놋제기(祭器) 등은 공출되어 소총이나 대포의 탄피가 되었다.

안방에는 태엽으로 움직이는 괘종시계가 걸려있고 밑에는 한 자 길이의 삼베수건이 걸려 있다. 십여 명의 대식구가 세수 후에는 수건 한장으로 온 가족이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물자가 귀한 시절이라 천석(千石)꾼, 만석꾼 부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똑같은 당시의 처지였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안질이 걸리면 온 식구가 빨간 토끼 눈처럼 눈병이 났다.



27년 전 중국 쪽으로 백두산 관광길에 오른 적이 있다. 백두산 언저리에 있는 장백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맑은 공기 속의 객실에서 휴식하고 이튿날 호텔 출발을 앞두고 복무원이 나타나 일행의 승차를 막고 어느 객실의 수건 하나가 없어졌으니 찾기 전에는 출발할 수 없다고 한다. 국영 호텔이니 비품 하나라도 없어지면 복무원이 책임을 져야 하니 객실 체크아웃이 끝나면 종업원은 득달같이 비품점검을 한 모양이다. 그때는 중국이 지금처럼 잘 살지 못한 시절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가 보다. 하긴 근래까지도 중국 관광객이 기내식을 먹고 나면 포크 따위가 없어진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다행 중 일행 한 분이 호주머니에서 손수건 크기의 호텔 수건을 꺼내 주고서야 소동은 끝이 났다. 그분은 그 수건을 구두에 앉은 먼지떨이로 챙겨 넣었다고 변명을 하였다. 그 수건의 질은 일제 말 우리 집에서 쓰던 올이 엉금엉금한 삼베수건 정도였다.

어느 해인가 한국 기업인들이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올 때 평양의 만수대창작사에서 그림을 구매하여 들여오다 말썽이 난 적이 있었다. 그림에 문외한이라 품평할 자격은 없지만, 북한의 그림은 원색이 강렬한 것이 남한의 화풍과 다른 것 같다. 만수대창작사는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그림과 조각 등 기념물을 주로 만들어 왔고 해외에서 독재자 조각상을 제작하는 등 외화벌이에도 나서고 있다. 북한 관광에 빠지지 않는 코스인 만수대창작사는 관광객 상대로 외화벌이가 꽤 잘 되는 것 같았다. 그림값이 저렴한 편이라 그런 것 같다. 남북회담 때 사진을 보아도 북한의 호텔이나 큰 홀 배경에는 대형 그림이 많이 걸려있다.

몇 년 전 북한 관광을 마치고 양각도 호텔을 떠나던 날 아침에도 수건 소동이 또 일어났다. 객실의 수건 한장이 없어져 찾기 전에는 공항행 버스가 출발할 수 없다는 상황이 생겼다. 안내원의 설득으로 어느 여자 승객이 가방에서 문제의 수건을 꺼내 주었다. 그런데 그 수건에는 금강산 그림이 천연색으로 인쇄된 객실용 수건이었다. 그분은 그림을 좋아하여 만수대창작사에서 그림 몇 점을 샀지만 호텔에 비치된 그 수건이 좋아 보였는지 본인 생각으로는 아마 북한에서 덤으로 하나 얻는 셈 치고 호텔 수건을 챙겨 넣었던 같다. 물자가 풍부한 한국이나 미국 호텔은 소모품으로 인정하는지 수건 한장 없어지는 것은 신경을 쓰지 않는 것과 무척 대조적이었다. 만수대창작사의 해외개발회사는 유엔 안보리 제재 대상이다.

한여름 땀을 닦으며 수건에 얽힌 추억을 더듬다 보니 그곳이 모두 공산체제의 국가였다.


윤봉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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