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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 기념일과 우리동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의 전면적 확산에도 불구하고, 미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의 축제와 기념행사들을 성대한 규모로 치를 것을 독려해 왔음에도 4일 대부분 지역의 주 정부와 도시관리들은 이날 주민들에게 과열된 열기를 자제하도록 권유하며 행사규모를 축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토요일 오후를 특별한 저녁이라며 대규모의 군중이 참여하는 불꽃놀이 등을 독려했다. 워싱턴에서는 타는 듯한 폭염에도 오후부터 백악관 부근 내셔널 몰 거리에 모여든 군중은 이곳 저곳의 가로수 그늘에 들어가 햇볕을 피했고 근처 백악관 남쪽 뜰에서 열리는 파티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백악관 경축행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로 무르 익을 때 군용기가 벌이는 에어쇼와 예년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크고 화려한 불꽃 놀이가 펼쳐졌다. 내셔널 몰의 군중은 지난해에 발디딜 틈이 없었던 군중에 비하면 충격적일 만큼 드물었고 대개는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다.
독립전쟁은 1775년 4월 19일에 영국군이 매사추세츠 민병대를 급습한 것을 기화로 촉발됐다. 식민지 진영은 즉시 전열을 정비하고 영국군에 저항했다.
1775년 5월에 제2차 대륙회의가 소집됐으며 조지 워싱턴 버니지아 대의원이 대륙군 총사령관에 임명됐다. 워싱턴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영국에 맞서 미국 군대를 이끌었다.
식민지 진영은 독립을 목표로 8년 동안 격렬하게 투쟁했다. 그들은 영국군에 비해 훈련과 물자가 부족했지만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확고하게 단합된 목표가 있었고 익숙한 지형을 배경으로 전투에 임했으며 원주민들로부터 습득한 새로운 전술을 활용했다. 병사들에게 군복이 없는 경우가 많았지만 평상시 복장이 산속에서는 오히려 위장에 도움이 된 반면에 이른바 ‘레드 코트’를 착용한 영국군은 화려한 붉은색 제복 때문에 쉽게 눈에 띄었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전투를 치르는 동안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에서는 또 다른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1776년 7월 2일, 대륙회의는 불만 사항을 열거한 문서를 2차로 작성했다.
대륙회의 의장이었던 존 핸콕이 이 문서에 가장 먼저 서명했다. 영국 왕실은 이 문서(독립선언서)를 반역 행위로 간주했으며 서명자 56명은 처형당할 위험에 처했다.
하지만 대륙회의는 이에 굴하지 않고 1776년 7월 4일에 독립선언서를 승인함으로써 잉글랜드와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단절하고 신생 독립국인 미합중국을 건국했다.

독립기념일은 영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한 날인 7월 4일에 기념한다. 독립선언서는 1776년 7월 8일에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으며 주민들은 이에 환호했다.
종이 울리고 악단이 축가를 연주했으며 선박은 축포를 쏘았다. 주민들은 촛불을 밝히고 폭죽을 터뜨렸다.
하지만 독립전쟁은 최종적으로 독립을 거머쥔 1783년까지 지루하게 이어졌다. 이해에 열세 개 신생주가 독립기념일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독립기념일은 1941년에 가서야 연방 국경일로 공식 선포됐다.
미국의 가장 중요한 국경일이라고 할 수 있는 독립기념일은 1776년 7월 4일, 펜실베니아 필라델피아에서 대륙의회가 독립선언문을 공식적으로 채택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독립 선언문은 독립 국가가 되기 위한 미국 식민지의 확고한 의지를 담은 강력한 성명서다. 독립기념일은 1941년 법정 공휴일로 선언된 이후 해마다 7월 4일이면 축하행사가 전국적으로 벌어진다.

미국의 건국 이념을 다시 되새겨보는 이날,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자유와 독립을 축하하기 위해 각지에서 피크닉, 가두 행진 및 연주회, 화려한 불꽃놀이 행사 등의 기념축제로 뜻깊은 하루를 보낸다.
자크 마리탕(Jacques Maritain)이라는 프랑스의 유명한 카톨릭 철학자는 일찍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인류의 미래를 구원할 유일한 희망은 미국 뿐이다라고 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많은 우리 동포들도 마찬가지일게다. 미국의 자유, 평등, 누구에게나 열려있던 동등한 기회, 미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수 있었던 미국 독립기념의 이념이 자크마리탕이 내다보았던 “인류 미래의 희망”이 여전히 소수민족으로 이국땅에 발을 내딪은 미주 한국 동포들의 꿈이 될수 있을런지 가슴 한구석 풀리지 않는 매듭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이제 싫든 좋든 미국에 살아가는 해외 이민자들임에 틀림이없다. 그리고 여기서 성공을 해야하고 그 성공이 조국에 도움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재외국민들은 이제 통일한국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통일한국이 된다면 당장에 북한을 먹여 살려야하고 구소련 땅인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그리고 연해주 등지에서 살고있는 고려족과 중국땅에 살고 있는 조선족의 모국 귀화를 대비 해야한다.

이들은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도 분단된 조국의 어느편에 있을수가 없어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고 들었다.
통일 한국으로 돌아올 이들을 위해서라도 재외 국민들은 그 자리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하고, 미국 시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충실히 지키고, 용기와 열정을 가진 한국 젊은이들은 우물 안을 떠나 넓은 해외로 나가 배우고 견문을 넓히는 것이 본인과 국가에 보탬이 될수도 있다고 보는 필자의 사고가 잘못된 것이 아니리라 생각해본다.


유흥주 / 한미자유연맹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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