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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호의 시사분석]의사 노갑준

그의 부고를 듣고 나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기에는 아직 연세가 많지 않았고 평소 그의 얼굴엔 활기와 생기가 넘쳤기 때문이다. 불과 몇일 전까지만 해도 사진 속에서 그를 접한 직후여서 충격의 여파는 더욱 컸다.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시카고 한인회가 한인 의료인들을 위해 마스크를 전달했었고 거기에 고인이 있었다. 마스크를 받아 들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또 코로나19로 인해 한인사회에서 모금 활동이 시작됐는데 그의 이름을 성금 납부자 명단 상단에서 발견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의료 현장에서도, 커뮤니티를 위한 일에도 적극적이었던 그가 어떻게 이렇게 황급히 우리 곁을 떠나야만 했는지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필자가 고인을 접한 것은 아리랑 라이온스 클럽에 속해 있으면서 입양인 피크닉과 한국 문화체험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였다. 그리고 가까운 가족이 고인을 주치의로 삼고 있었던 인연으로 인해 닥터 노갑준으로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고인은 입양인을 위한 사업을 할 때 언론사를 포함해 한인사회 곳곳을 찾아다니며 이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사실 시카고에서 한인 입양인들을 위한 다양한 사업은 라이온스 클럽에서 오랜 시간 주도적으로 펼쳐왔는데 여기에 고인의 헌신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 전 소셜미디어를 통해 고인이 나온 동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라이온스 클럽이 진행해 온 그간의 활동 상황이 자세히 나와 있었던 동영상이었다. 거기서도 고인은 입양인 사업에 대한 필요성과 당위성을 차분한 어조로 역설하기도 했었다. 매년 시카고 인근 공원에서 진행되는 라이온스 클럽의 연례 입양인 피크닉에 몇차례 나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라이온스 클럽을 상징하는 노란색 조끼를 입은 채 다른 회원들과 함께 열심히 봉사활동에 전념하는 그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또 고국에 다녀온 입양인들이 얼마나 한국에 대한 이해와 애착이 커졌는지 설명할 때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마치 그런 활동으로 인해 본인이 더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인터뷰어로 즉각 감지할 수 있었다.

필자의 가족이 병원에 입원하게 됐을 때 환자의 현재 상태와 원인, 앞으로의 검사나 치료 계획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며 가족을 안심시켰던 고인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전까지 고인은 적어도 필자에게 단체를 이끌던 모습만 봤다가 의료인으로, 환자를 돌보는 자리에서 만났기에 사뭇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카고 한인사회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의사로 오랫동안 의료현장을 지키며 시카고를 빛낸 위인으로도 선정됐던 그였다. 주총무처 등을 포함해 여러 기관에서 그의 공적을 인정해 상을 전달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했기에 고인의 인간적인 모습을 더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도 있었다. 하루 일정이 끝난 뒤 작은 팩에 담긴 와인을 함께 나누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던 것은 지금 되돌아 보면 나에겐 큰 행운이라고 느껴진다. 이렇게 황망하게 우리 곁을 떠나기 전 고인과의 추억을 하나 간직하게 됐기 때문이다. 더불어 고인이 오랜 시간 후원해 왔던 한인 단체의 관계자들과 함께 환갑 잔치를 했을 때 일화 등을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으니 한인사회에 꼭 필요한 인물이 너무 일찍 잃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인사회의 이민 역사가 길어지면서 그간 커뮤니티를 위해 헌신한 이들이 떠나면서 두고 간 기억을 제대로 남겼던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 본다. 꼭 거창할 이민 역사 자료집은 아니어도 좋겠다. 다만 그들이 남기고 간 담담한 발자취를 담을 수만 있다면 닥터이자 커뮤니티 활동가로 환한 웃음을 띤 모습의 고인을 편히 보낼 수 있겠다. [객원기자]


박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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