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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네트워크] 한인 김상현씨가 씨름 가르치는 이유

1980년대 씨름판에선 이만기·이봉걸·이준희 등이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했다. 세 명 중엔 특히 이만기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키 1m82㎝의 이만기는 현란한 기술로 2m5㎝의 거인 이봉걸을 번번이 모래 위에 쓰러뜨렸다. 들배지기는 물론 호미걸이·빗장걸이 등의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특히 허리를 뒤로 젖히면서 거구의 상대 선수를 들어 올려 머리 뒤쪽으로 집어 던지는 기술은 이만기의 전매특허였다.

이씨 트로이카가 모래판을 떠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던 씨름이 최근 인기를 회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깔끔한 꽃미남 외모에 군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근육질의 ‘씨름돌(씨름+아이돌)’이 속속 등장하면서 젊은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씨름의 기술이나 묘미 자체보다 선수들의 외모와 몸매에 초점을 맞추는 점이 씁쓸하지만 그래도 씨름의 부활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은 씨름 선수들이 날씬해지길 원한다(South Korea wants its sumo wrestlers to slim down)’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의 씨름 열기를 소개했다. 신문은 ‘식스팩으로 무장한 아이돌 스타 같은 선수들이 활약하면서 씨름의 열기가 살아나고 있다’며 ‘살찐 남성들이 나와 땀 흘리던 옛날의 씨름을 더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소개했다. 그런데 일부 네티즌은 한국의 ‘씨름 선수’를 ‘스모 레슬러’라고 표현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외국 언론이 ‘씨름’을 ‘스모’라고 표기한 건 유감이다. 그러나 남탓을 하기에 앞서 정작 우리 스스로는 씨름을 보존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씨름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풍속이다.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한민족 문화의 결정체 중 하나다. 지난해 유네스코는 한국의 전통 레슬링 씨름(Ssireum/Ssirum)을 북한의 씨름과 함께 인류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올렸다. 인류 전체의 유산으로서 씨름을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 가운데 얼마 전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재미동포 김상현씨의 사연이 눈길을 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전통을 보존하기 위한 미스터 김의 외로운 싸움’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뉴욕 퀸스에 사는 56세 김상현씨가 17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씨름을 보존하기 위해 30년째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김씨가 해마다 2만 달러 가까이 돈을 쓰면서 씨름을 가르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청소년에게 한국 문화를 가르쳐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씨름은 일본의 스모와 달리 상대방을 힘으로 밀어내지 않는다. 손으로 때리거나 발로 차지도 않는다. 승부가 끝난 뒤엔 승자가 모래판에 쓰러진 패자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준다. 씨름은 그래서 신사의 스포츠로 불린다.

일본은 1909년 도쿄의 한복판에 스모 전용 경기장을 세운 뒤 스모를 일본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키워냈다. 그러나 씨름은 자칫하면 명맥이 끊길 위기다. 최근 꽃미남 선수들 덕분에 인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인다지만 씨름을 옛사람이나 즐기는 고리타분한 유물쯤으로 여긴다면 그 인기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씨름을 스모라고 표기했다고 화만 낼 게 아니라 왜 미국에 사는 김상현씨가 청소년들에게 씨름을 가르치는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정제원 / 한국중앙일보플러스 스포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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