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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네트워크] 신화의 끝, 교훈의 시작

신화(神話·myth)가 아니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대우그룹 창업주 김우중 전 회장의 부고에 그의 발자취를 다시 들여다보며 든 생각이다. ‘샐러리맨의 신화’가 지자 각계에서 추모가 한창이다. 며칠 새 페이스북 등 각종 소셜미디어 타임라인에서 고인과의 여러 추억이 공개되기도 했다. 일반인 조문객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쓸쓸했다는 그의 말년을 생각할 때 가시는 길이 조금 덜 외로울 것 같다.

다만 김우중 신화의 의미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신화는 과거로부터 전승되는 일종의 종교적 체계, 하지만 현재에는 적용할 수 없는 옛 얘기다. 한 사회가 과거를 효율적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고 이 바탕에서 문화가 자란다. 김우중 회장의 삶이 ‘신화’로 표현되는 것은 그래서 여러모로 적합하다. 김우중은 영감의 대상일지언정, 더는 그의 방식을 따를 수는 없다.

고인이 이룬 업적을 뒤돌아보면,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많다. 500만원을 쥐고 시작한 사업을 불과 몇 년 만에 1억 달러 수출탑을 자랑하는 기업으로 키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결단력과 용기도 그의 특장점이었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모든 신화가 그렇듯, 경계해야 할 것은 지나친 미화와 선택적 망각이다. 대우그룹의 실패는 아직 한국 경제에, 사회에 아프게 기록돼 있다. 대우그룹 해체 이후 대우조선해양에 투입된 천문학적 공적자금은 이중 꽤 큰 상처다.



그 병든 거인은 한국 조선업의 운명을 쥐고 있다. GM에 매각된 대우자동차는 20년째 생존 투쟁 중이다. 김 회장에게 17조9253억원이라는 거액의 추징금이 부과되고, 이 중 0.5%만 납부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의 영전에서 할 일은 재계 서열 2위 그룹이 무너진 과정을 복기하면서 사회에 남긴 교훈을 되새기는 것 아닐까. 외환위기를 통해 우리는 대단한 도전을 할 때도 투명함과 준법의식이 매우 중요함을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웠다. 당시 정권의 탄압이 있었다는 설도 제기되지만, 설령 부분적으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본질은 대우의 과도한 부채와 타이밍을 놓친 구조조정, 잘못된 경영적 선택이라고 보는 게 맞다. 영광은 영광대로, 실패는 실패대로 기록해야 한다.

김우중, 혹은 대우그룹이 신화가 아닌 펄펄 살아 뛰는 현재진행형 성장담이었더라면 훨씬 좋았겠다. 아쉽지만 이는 이루지 못한 꿈이다. 늘 그렇듯, 거물의 공과는 몇 마디로 단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할 일은 많고 세계조차 비좁다고 한 김 회장이 편히 쉬시길, 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전영선 / 한국중앙일보 산업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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