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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라이벌 의식은 발전의 동력

[LA중앙일보] 발행 2019/12/16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9/12/15 12:25

곧 20년대의 첫 해가 막을 올린다. 1960년생이 환갑이 되는 경자년 쥐띠해다. 영어로 ‘완벽한 시력’을 뜻하는 20/20로 어감도 나쁘지 않다.

새해엔 굵직한 이벤트가 안팎으로 줄을 섰다. 2월 코커스(당원 대회) 개막, 3월 가주 예비선거, 4월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7월 도쿄 올림픽-민주당 전당대회, 8월 공화당 전당대회, 11월 대통령-연방 상하원 선거 등 숨돌릴 틈 없다. 언론인 입장에서 기사 복이 터진 셈이다.

직업상 인생 대부분이 이런 시간의 연속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하나의 걸림돌을 해결하면 마치 좀비처럼 또다른 경쟁 상대와 뉴스가 나타난다. 싸우고 나면 더 새롭고 어려운 괴물이 눈앞에 서있는 식이다. 기자의 경우에는 경쟁사 외에도 매일 마감 시간과 싸워야 한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더 단련되고 강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단연 경쟁의식(rivalship)이라고 여겨진다. 되돌아보면 고교·대학·회사 등 개인적으로 평생 라이벌을 낀 채 살았다. 한국에 살 때는 일본과, 미국에 와서는 LA-뉴욕의 동서 대결 의식 아래 지내고 있다.

‘라이벌이 없는 편이 나을까’라는 상상도 해봤다. 막말로 일본이 침몰하면 한인으로서 행복해질까. 한국은 더 발전할 수 있을까. 결과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도 없으면 오히려 나태해지고 퇴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만만치 않은 적을 곁에 두면 더 노력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물론 힘이 없으면 임진왜란·한일병합 같은 모진 일도 당하게 되겠지만.

그렇지만 잘 활용할 경우 미국처럼 짧은 시간에 초강대국으로 일어서는 촉매가 될 수 있다.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미국은 라이벌 의식을 권장하는 나라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후 243년째 이 같은 의식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 언어·문화·인종·종교가 비슷한 캐나다와는 북쪽, 모든 것이 판이한 멕시코와는 남쪽으로 마주하고 있다. 하키·축구 대표팀 경기라도 열리면 북미 최고의 열기를 창출한다.

50개주 역시 지역별로 차이가 뚜렷해 유럽처럼 선의의 대결을 벌인다. 노예제도를 두고 아예 연방을 탈퇴하며 남과 북이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농업(남부)-공업지대(북부)라는 차이에도 지역마다 독특한 언어·기후·종교·인종분포를 보여준다.

이곳에서의 경쟁은 지구촌 250여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끼리 ‘개개인을 위한 합중국’(one for all) ‘합중국을 위한 개개인’(all for one)이란 핵분열을 이루고 있다. 기자 역시 맹목적인 획일성보다 개인의 다양함을 인정해주는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한국사회의 경우 최근 불공정이 난무하고 새치기를 비롯한 부정적 경쟁이 통한다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물론 지나치면 부작용도 뒤따른다. 세계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영토가 큰 캐나다는 프랑스어권(동쪽 퀘벡주)-영어권(서부)의 고질적 반목이 악명 높다. 스페인은 동부 카탈루니아주가 독립을 요구하고 있으며 영국도 스코틀랜드가 언제 떨어져나갈 지 노심초사 중이다.

개인과 국가 모두 세월이 흐를수록 변화에 시큰둥해지며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도 줄어든다. 스스로 만들어나가고 다짐하는 라이벌 의식은 삶에 긍정적인 의욕과 아드레날린·엔도르핀을 부여한다. 위약(플러시보)이 아닌, 만병통치약(패너시아)이라고나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불사약(엘릭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매번 교체해야 하는 좋은 라이벌, 새해에도 많이 만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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