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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3·3 예비선거와 빨래 말릴 권리

이민 초창기다. 아내가 못마땅한 표정이다. 앞에 젖은 빨래가 수북하다. “미국은 밖에 널면 안된다며? 뭐 그런 게 다 있어. 이 좋은 (햇)볕을 놔두고….” 투덜거리며 방안에 건조대를 편다. 전기로 돌리는 건조기(드라이어)는 영 마뜩잖다. 잘못하면 옷이 줄고, 빨리 헐어서란다.

패티 로페스란 사람이 있다. 멕시코계 이민자다. 12살에 미국으로 왔다. 영어는커녕 가난 탓에 정규교육도 못받았다. 14살부터 일을 했다. 가정부, 보모, 식당 서빙, 공장 근로자.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다.

그러면서도 배움은 잊지 않았다. 혼자서 영어를 깨우쳤다. 18살까지 어덜트 스쿨을 다녔다. 교육, 노동문제 같은 것에 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틈틈이 사회 활동에도 참여했다. 그러던 중 정치와 연이 생겼다. 급기야 출마까지 하게 됐다. 그녀의 나이 46세 때다. 2014년 LA, 샌퍼낸도 지역인 가주 39지구 주 하원의원 후보(민주)로 등록했다. 후원금은 겨우 1만6000달러였다. 현직인 상대(민주·라울 보카네그라)는 100만 달러가 훨씬 넘었다.

예비선거는 참패가 당연했다. 62.5%-23.6%. 현직의 득표율이 2배 이상 압도했다. 그러나 본선 투표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466표, 불과 1% 차이로 뒤집혔다. 당선 즉시 보복이 시작됐다. 온갖 고소, 고발이 들어왔다. 여러 건의 선거자금 위반 혐의였다. 심지어 비밀 공화당원이라는 소문에도 시달렸다. 무려 1년간의 조사가 이뤄졌다. 대부분 무혐의로 결론났다. 사소한 위반에 대해서만 약식 벌금형이 내려졌다.



그렇게 정신없는 임기 첫 해였다. 그럼에도 초선 의원은 몇 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그 중에 특이한 게 있었다. 마당에 빨랫줄을 허용하자는 안이었다.

비슷한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코웃음거리였다. 누가 그런 데 신경이나 쓰겠나. 반대도 강했다. 주택, 건축업계가 정색했다. 좋은 말로 미관상의 이유였다. 가난의 상징으로 치부됐다. “그런 거 하면 집값이 10~15%는 떨어진다.” 그들의 주장이었다.

입안자는 반박했다. 그런 곳에서 성장한 사람이다. “다가구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돈도, 시간도 없다. 언제 드라이어 쓰려고 줄서서 기다리냐. 전기료도 만만치 않다. 한달에 6~10%는 더 들어간다. (전기를 덜 쓰니까) 게다가 환경 영향도 생각하라.” 로페스 의원을 당할 재간이 없다.

결국 그녀의 고집이 통했다. 2016년 1월 1일. 가주에 새로운 법이 발효됐다. 이른바 빨래 말릴 권리(Right to Dry)다. 마당 빨랫줄과 패티오 건조대가 자유를 얻었다. 드디어 캘리포니아의 화창한 햇볕이 일거리를 얻은 셈이다. 물론 아내의 세탁도 다양성을 확보했다. 이 법은 그보다 7년 전, 그러니까 2009년 플로리다에서 처음 제정됐다. 현재는 미국 19개주에서 시행된다.

아마 10년은 된 것 같다. KBS TV 드라마가 있었다. ‘프레지던트’라는 제목이었다. 최수종이 주연이다. 대통령 후보였던 그의 극중 대사다. 정치에 시큰둥한 대중을 향한 일갈이다.

“영어 사전은 종이째 찢어먹으면서, 기껏해야 몇 쪽 안되는 손바닥만한 선거 공보엔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제 말 틀렸습니까?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은 보호받지 못합니다.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은 결코 보호받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분노와 서러움을 표, 오로지 표로서 나같은 정치인에게 똑똑히 보여주십시요.”

내일(3일) 예비 선거 날이다. 햇볕을 빨래에만 양보하지 마시라. 그날은 밖으로 나가야한다.


백종인 /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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