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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대학총장 키워낸 어머니의 재봉틀

정구현 / 사회부 부장
정구현 / 사회부 부장 

[LA중앙일보] 발행 2016/11/07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6/11/06 17:12

어머니의 재봉틀 소리가 들린다. 소리 사이의 간격은 1mm도 안 되는 바늘만큼이나 촘촘하다. 빨리 돌리면 가족은 더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1973년 오하이오주 애크런이라는 낯선 도시에 정착한 한인 가정의 유일한 생계 수단은 재봉틀이었다.

"애들이 넷이니까 취직은 생각도 못했어요. 애들을 다 맡길 수 없잖아요. 그러니 재봉틀을 돌릴 수밖에요."

다른 이민자들처럼 영어가 미숙했고, 특별한 기술은 없었다. 태권도복을 만들어 팔았다. 중부 공업도시에 태권도장을 차린 시동생이 고마웠다고 했다.

강석희(79)씨는 43년 전 막막했던 이민 첫 해를 더듬었다. 강씨는 미주리대(UM) 신임총괄총장에 임명된 최순영(52) 코네티컷대 공대학장의 어머니다. 최 총장은 1남3녀 중 장남이다.

지난 2일 제퍼슨시 캐피톨 플라자 호텔에서 아들의 공식 임명 발표행사가 열렸다. 그녀도 참석했다. 교수와 교직원 100여명의 박수를 받으며 아들은 단상에 올랐다. 연간 31억 달러 예산과 7만7000명 재학생, 2만여 교직원을 책임져야하는 막중한 직책이라고 했다.

행사 후 최 총장은 축하 인사를 건네는 기자에게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했다. 40분간 전화 인터뷰 끝에 최 총장은 어머니 강씨에게 셀폰을 넘겼다. 소감을 묻자 강씨는 "미국이 고맙다"는 말만 했다. 10분여 짧은 대화에서 강씨는 아들처럼 겸손했다.

차고에서 재봉틀을 돌려 태권도복을 만들었다고 했다. 중부의 혹독한 겨울에 히터가 없는 차고에서.

"처음에는 도복만 만들다가 나중에 종류를 늘렸어요. 부엌 용품, 목욕 가운… 그 원단으로 만들 수 있는 건 모두 만들어 팔았어요."

도복의 뻣뻣한 질감이 기자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강씨는 남편 최동렬(2010년 작고)씨와 함께 '새벽부터 새벽까지' 30여년간 봉제일을 했다고 했다. 열심히 살았다는 자랑이 아니라, 그 다음 말을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아이들을 돌볼 사이가 없었어요. 큰아들이 여동생 셋을 다 먹이고 학교에 데려다 주고… 키우다시피 했어요. 미안하죠. 해준 게 없어서."

장남 자랑을 해달라는 말에 강씨는 학창시절 성적이나 항공우주국(NASA)과 일한 경력을 말하지 않았다.

"중학교 다닐 땐가 겨울에 눈이 참 많이 왔어요. 동네에 노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아침에 빗자루를 들고나가더니 집집이 눈을 다 치우고 들어오더라고요."

최 총장 아래 세 딸도 훌륭히 자랐다. 둘째는 변호사가 됐고, 셋째와 넷째는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네 남매가 성장하는 동안 재봉틀 하나로 시작한 부부의 생업도 직원 200명의 봉제회사로 컸다. 최 총장의 아버지는 65세가 되던 해 딸들을 불러들여 회사를 맡겼다. 이름이 '최 브라더스'인 봉제회사를 최 시스터스가 운영하게 된 사연이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해준 게 없다고 했지만, 아들은 "부모님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평생 별을 보고 출근해 별을 보며 집에 돌아오는 부모의 삶 자체가 그에겐 교훈이었다고 했다.

그 배움은 그가 말한 '지도자의 원칙'에 녹아 있다. 인종차별 논란으로 어수선한 대학의 총장에 오른 그는 "지도자는 먼저 들어야 한다"고 했다. 또, "학생들이 시위한 이유는 지도자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원칙이 지켜질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다짐만큼은 어머니의 재봉틀 바늘처럼 곧다. 곧지 않은 일이 한국과 미국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다. 현재의 지도자나 미래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이들 모두 올곧지 못해서다.

봉제공장에서 바늘 한 개의 수명은 길어야 나흘 정도라고 한다. 부러지지 않아도 바늘이 휘어져서 바늘 땀이 건너뛰고 실이 끊길 수 있어 갈아줘야 한단다. 지도자는 다짐의 바늘이 휘어질 때 즈음 새 바늘을 꺼내야 한다. '드르륵' 소리는 '바르게 살아라'는 부모의 평생 바람이다.

어머니의 재봉틀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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