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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사-악 말고 싹

겨. 아녀. 혀. 안 혀. 이중모음의 나라 충청도 언어다. 나는 그곳에서도 충북의 수도 청주에서 2300여 일 동안 방송기자로 일했다. 어디가 맛집인지보다 어디서 무슨 사건이 났는지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피 냄새를 맡던 하이에나 같던 삶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곳 생활도 나쁘지 않았다. 말 때문이다. 내 고향 경상도가 직선적인 모난 언어를 쓴다면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충청북도는 둥근 언어였다. 때로는 경제성이 떨어지는 말이었지만 어찌 됐든 면전에 사람을 두고 호불호를 칼질하지 않았다. 피 흘리는 일 없으니 조심하면 중간은 갔다.

지난 몇 주 간 그곳, 이중모음의 도시 청주의 소식이 뜨거웠다. 재난재해 없는 곳이라 자평하던 곳에서 난데없는 물난리가 난 것이다. 시간 당 91.8밀리미터의 기록적인 폭우에 재산 피해액만 150억 원이 훌쩍 넘었다. 논에 물꼬를 확인하러 갔던 농민이 급류에 휩쓸려 죽었고 도로를 보수하던 공무원이 차량에서 잠시 쉬다 유명을 달리했다. 아침 6시에 비상소집령을 받고 출근해 저녁 8시 반까지 일하던 그였다. 레테의 강에도 그날 물이 넘쳤던가.

폭우가 지나니 폭언이 쏟아졌다. 김학철 충북 도의원이 "국민은 레밍이다"며 국민을 리더를 따라 우르르 죽는 자살 쥐에 비유한 것이다. 그는 청주에 이례적인 수해가 나고도 외유성 유럽 연수를 갔다가 언론의 뭇매를 맞자 이 같은 말을 내뱉었다.

결국 출국 4일 만에 귀국해 흰 바지에 반팔티를 입고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고도 수해현장에 나타나지 않은 대통령도 탄핵감이라는 둥 적반하장 식 발언을 해 애꿎은 도민들만 '폭언주의보' 속에 수해복구 작업을 해야 했다.



사실 충청도 출신 정치인의 직선적인 말은 이례적이다. 충북 음성 출신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대권 후보로 나섰을 때도 전형적인 충청도형 참모라며 의아해 했다. 확실한 언어보다 해석이 많은 말을 하기 좋아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미군 부대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작은 군의 주민 간담회에 간 적이 있다. 군수는 주민들을 앞에 두고 "미군 부대가 없으면 좋기는 한데 막을 수는 없고, 저는 요즘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그런데 주민 여러분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식으로 간담회를 끝냈다. 이상한 끝맺음에 황당하기까지 했다. 그러고도 군민들은 반발하지 않았다. 충청도 사람들은 웬만하면 참는다. 그런데 그런 도민들이 뿔이 난 거다.

사-악.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충청도 사투리다. 비교적 시원스럽게 일을 해낸다는 표현일 테다. 특히 "오늘 술이나 삭 한 잔할까"라 말하던 친구의 말은 거역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삭'으로 안 된다. 국민에게 모욕적인 말과 행동을 한 정치인들은 '싹' 물갈이 해야 한다. 그래야 도민들이 편하게 산다. 다만 다른 위정자들은 너무 호들갑 떨지 말고 은근하게 도민들에게 다가가 마음을 '삭' 위로해야 한다. 이중모음의 나라에선 백성들이 좋고 나쁨을 드러내지 않는데 곧잘 선거 표심으로 증명해 보이곤 했다.

아무튼, 나는 방송기자로 일하다 여기서 처음 신문기자가 됐다. 아직도 고개를 돌리면 충청도가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이곳 LA에 정착해 한인 이민자들을 '사-악' 위로할 수 있는 기사를 많이 써야겠다.


황상호 / 기획취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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