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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일을 향해' 손톱에 꽃을 그렸다

직업탐사: 한인들의 땀과 꿈 <3>매니큐어리스트 박성자씨

2002년 맞선보러 온 뉴욕서
퇴짜맞았지만 '신세계' 경험
"아직 젊다" 손톱 미용 도전
LA서 10주 과정 학원 등록
손톱에 직접 그림그려 히트
'10년 셋방살이'끝에 성공
"손톱 다듬 듯 마음도 꾸며"
'네일 선교단' 통해 자원봉사


"언니 나 속상해 죽겠어."

"왜 왜 무슨 일 있어?"

시댁에서 핀잔을 들은 단골손님이 투정을 부린다. 매니큐어리스트 박성자(44)씨는 손님에게 귀를 열어두고 시선은 손님의 손가락에 고정했다. 손톱이 상하지 않도록 가장자리를 자르고 가운데를 손질한다. 줄의 일종인 네일 파일로 손톱을 긁는다. 손톱 성분인 케라틴이 먼지가 돼 포르르 날린다.



"아니 시어머니가…. 남편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것까지 나 때문이라잖아. 말이 돼?"

반응이 중요하다. 조언이라고 지나치게 개입했다간 화살이 성자씨에게 돌아온다. "그랬구나. 어쩌면 좋니." 성자씨는 손님의 말을 들으며 미용 니퍼로 각질인 큐티클을 섬세하게 오려낸다. 자칫 살이 찢어져 피가 날 수 있다. 손님 마음에도 생채기가 남지 않도록 말을 가려 한다. 때로는 수술방 의사처럼 때로는 타로카드를 보는 점쟁이처럼 몸과 마음을 함께 '큐어'해야 한다.

13년차 매니큐어리스트 박성자씨는 10년 동안 한인타운 한 미용실내 작은 공간을 빌려 네일샵을 운영하다 3년 전 독립했다. 350스퀘어피트의 아담한 가게를 얻어 탁자 두 개를 놓고 직원 2명과 일하고 있다. 4가와 웨스턴의 '웨스턴 병원'몰에 있는 네일샵 '봉숭아'다.

올해 초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불법 체류자 단속 때문에 손님수가 줄어 힘들었지만 다행히 요즘 다시 회복세다. 박씨는 거의 예약 손님만 받는다.

"2005년 2006년이 가장 활황이었죠. 직원들 월급 다 주고도 한 달에 1만 달러는 벌었으니까요."

그는 서울 월계동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놀이터에서 아이들 머리를 땋아주며 '꼬마 미용사' 노릇을 했다. 처음 매니큐어를 만진 건 고등학교 때다. 한 집에 살던 사촌언니의 화장품이 너무 예뻐 손을 댔고 꾸중을 들었다.

"어릴 때부터 미용에 관심이 많았어요. 친구들에게 손톱을 칠해주면 친구들이 '네일샵보다 더 잘한다'고 했어요. 손재주가 남달랐죠."

미국에는 2002년에 처음 왔다. 경남 밀양에서 옷가게를 하다 접고 서른 살에 선을 보러 뉴욕으로 왔다. 하지만 남자쪽 어른들은 "시민권 따기 위해 온 것 아니냐"면서 퇴짜를 놨다.

맞선은 틀어졌지만 헛걸음만은 아니었다. 미국은 신세계였다. 모든 것이 세련돼 보였다. 맨해튼에는 한 블록내 한인 네일샵이 서너 군데 이상일 정도로 성황이었다.

"한국에선 여자 나이 서른에 시집을 안 가면 뭔가 모자란 사람 취급을 받았어요. 그런데 미국은 아니었어요. 다들 자유로워 보였고 내가 아직 젊다는 것도 깨닫게 됐죠."

2005년 여행비자를 받아 외삼촌이 사는 LA로 왔다. '네일을 하면 굶어 죽지 않는다'는 주변 조언을 듣고 미용학원에 등록해 자격증 공부를 했다. 2개월 반 과정의 학원비는 2500달러였다. 특히 필기시험이 어려웠다. 영문으로 중학교 수준의 생물 화학 병리학에 해부학까지 공부해야 했다. 요즘은 한국어 객관식 필기시험이 있지만 당시에는 영어로 시험을 쳐야 했다.

"당시 동부에서는 한인 네일샵들이 대단했어요. 돈을 잘 벌어 '네일 재벌'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죠."

그녀는 학원 과정을 수료하기도 전에 미용실 네일샵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다. 오전에 공부하고 오후 1시부터 9시까지 손톱을 만졌다. 한 달 받는 월급은 1500달러. 팁까지 합하면 2200달러였다. 모두 현금이었다.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그녀의 '작품'은 히트를 쳤다. 보통 다른 매니큐어리스트들은 손톱에 색을 배열하고 인조 손톱을 붙이는 수준이었지만 성자씨는 손톱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장미꽃과 데이지꽃 토끼와 당근 등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를 만들었다. 한인타운에서는 첫 시도였다. "당시만 해도 저처럼 직접 디자인한 사람은 드물었어요.입소문이 퍼지면서 서로 해달라고 찾아왔죠. "

일반적으로 매니큐어가 10~15달러라면 성자씨는 꽃 한 개당 5달러씩 웃돈을 받았다. 모조 보석을 붙이면 개당 1달러 추가. 팁까지 더해 손님 1명당 100달러를 받았다. 벌이가 좋아졌고 그참에 일하던 미용실 안 네일 가게를 인수했다. 직원도 두세 명 채용했다.

일이 많아지면서 몸은 힘들어졌다. 구부정하게 앉아 일하다보니 목과 허리 등 관절병을 피할 수 없다. 또 아세톤이나 알코올 등 화약약품을 많이 사용하다보니 피부 질환도 생긴다.

"자다가 팔목이 잘려나갈 듯 아파서 잠에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운동선수들이 쓰는 진통제를 맞고 일한 적도 있어요."

이른바 '진상 손님'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손이 느리다며 갑자기 화를 내는 손님이 있었고 손님 발뒤꿈치의 각질을 제거하려 약품을 발랐다가 피부 질환이 생겼다고 폭언을 듣기도 했다. 어떤 손님은 "내가 미대를 나왔어!"라며 손톱에 그림을 그리던 성자씨의 붓을 뺏는 일도 있었다.

매니큐어리스트는 게으를 수 없다. 유행은 금방 변한다. 최근에는 말린 꽃이나 천 조각 머리핀도 네일 재료로 쓴다. 모조 보석은 기본이다. 성자씨가 작업 테이블 서랍을 열어 한국과 일본에서 공수한 장신구를 보여줬다.

"지금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보며 기술을 배우고 있어요. 요즘 손님들은 사진을 가지고 와서 그대로 해달라고 해요. 그때 재료가 없으면 곧 인기가 사라지죠."

얼마 전에는 '네일선교단'을 꾸렸다. 3년 전 다니던 교회에서 개최한 장애인 페스티벌에 참가했다가 감명을 받았다. "200~300명이 줄서서 기다렸어요. 자폐아를 키우는 어머니의 손에 빨간색 매니큐어를 칠해줬는데 너무 기뻐했죠."

지난해는 물도 나오지 않은 멕시코 산동네에 가서 검은 때가 낀 아이들 손톱에 다양한 캐릭터와 그림을 그려줬다.

"새로운 꿈이 생겼어요. 소외되고 어려운 나라에 선교가서 손톱을 다듬 듯 사람들 마음을 꾸며주고 싶어요."

매니큐어리스트가 되려면

주 정부가 인증한 학원이나 기관에서 400시간의 이론 실습 교육을 마쳐야 한다.

학과목에는 질병 위생 수업뿐만 아니라 생물 화학 수업이 포함돼 있다. 4년 전 한국어 필기시험이 생겼다. 240시간을 채우면 주립 미용 라이선스 기관인 NIC(national interstate cosmetology)를 통해 시험을 미리 신청할 수 있다. 보통 3개월 정도 기다려야 한다.

필기시험은 객관식 100문제다. 100점 만점에 70점 이상이 합격이다. 실기시험은 300점 만점이다. 필기와 실기시험 전체 400점 만점에서 300점 이상 받아야 한다.

산타모니카나 세리토스 등 코스메틱 칼리지가 있는 로컬 대학을 나와도 매니큐어리스트가 될 수 있다. 대신 학기를 수료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한국에서 미용학교를 졸업하거나 네일 일을 한 경력도 미국에서 인정된다. 다만 자격증 평가기관에 학교나 기관 일한 직장의 월급 내역 등 다양한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까다로운 작업이다. 또 주 정부 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온라인으로 2시간 정도 인증 교육을 받으면 부업으로 눈썹 문신 등 영구 화장도 할 수 있다.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미 전체 매디큐어리스트 수는 8만3840명이다. 재미한인미용협회는 한인타운 내 네일샵이 100곳 정도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황상호 기자 hwang.sangho@koreadaily.com hwang.sa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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