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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총기협회와 맞선 10대들

이번은 다르다. 아니 이번엔 정말 다를 수 있을까.

수십 명이 숨지는 대형 총기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총기규제를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고 총기규제 법안이 발의됐지만 미국총기협회의 로비와 이들의 돈과 표를 두려워하며 눈치를 살피는 정치인들의 반대로 법안은 번번히 무산됐고 "더는 안된다"는 외침은 대답없는 메아리로 흩어졌다.

그런데 17명이 숨진 플로리다주 고교 총격 이후 플로리다주에서는 총기규제 법안이 주 의회를 통과하고 주지사 서명까지 마쳤다. 총기규제의 핵심인 공격용 무기 판매 금지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총기구매 연령을 기존 18세에서 21세로 올리고 반자동 소총을 자동 소총처럼 만들어주는 범프스톡의 판매와 소지를 금지시켰다.

지난 9일 릭 스콧 플로리다 주지사가 이 법안에 서명하자마자 총기협회는 기다렸다는 듯 소송을 제기했다.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수정헌법 2조를 다시 치켜들었다. 총기협회가 총기규제 움직임에 딴지를 걸자마자 이번엔 백악관이 꼬리를 내렸다.



공화·민주 양당 의원들과 TV 생중계로 1시간이 넘는 대책 회의를 하며 "의원들이 총기협회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조롱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총기협회가 제안한 교사 무장화를 트럼프 행정부의 학교 안전 대책으로 내놨다. 자신이 요구했던 구매 연령 상향이나 범프스톡 판매 금지는 정치적 지지를 많이 얻지 못했다며 의원들의 책임으로 돌렸고 총기협회가 소송을 했으니 법원 판결을 지켜보자며 발을 뺐다.

고교 총격 참사 직후 21세 미만에게 총기를 판매하지 않기로 한 유통업체 딕스와 월마트도 소송을 당했다. 오리건주 20세와 미시건주 18세 청년이 소송을 제기했지만 그들 뒤에는 총기협회의 막강 변호인단이 자리잡고 있다.

사실 미국에서 총기소유에 가장 관대한 주 중 하나이고 자신을 총기협회 회원이라고 밝힌 공화당 주지사가 있는 플로리다에서 총기규제 법안이 도입됐다는 것만도 엄청난 변화다. 총격 참사 직후 민주당이 발의한 공격용 무기 금지 법안을 부결시키고 면담을 요구하는 학생들을 피해 회의장 뒷문으로 빠져나갔던 공화당 의회에서 22년 만에 처음으로 총기규제 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던 건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 총격에서 살아남은 학생들이 벌이는 '네버어게인(NeverAgain)' 캠페인에 힘입은 바 크다.

과거 총기규제 캠페인을 주도한 것이 정치인이었다면 이번에는 당시 총격 현장에 있던 10대들이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주 의사당을 찾아가 의원들을 만났고 백악관 앞에 드러누워 "총이 아닌 우리를 지켜달라"며 시위를 벌였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다음은 내 차례일 수 있다"며 총기규제를 호소했다.

자신들의 무기인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재기발랄한 쓴소리로 총기협회를 옹호하는 정치인들을 부끄럽게 했고 이런 상황에서도 '총은 총으로 맞서야 한다'는 메시지로 마케팅을 하는 총기협회를 향해 총기 보유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목숨을 지킬 수 있는 합리적인 법안을 만들자는 것이라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사람들이 죽어갈 것"이라고 맞섰다.

오는 24일 워싱턴DC에서는 이들 10대들이 조직한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 시위가 열린다. 포틀랜드와 필라델피아, 뉴욕, 샌프란시스코, 댈러스, 시카고 등 미 전역 수백 개의 도시에서도 동조 시위를 예고했다. 2016년 매 주말 계속된 한국의 촛불시위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새로 쓴 혁명이 됐다. 10대들이 치켜 든 촛불에 어른들이 힘을 보태고 그 촛불이 꺼지지 않고 횃불이 된다면 이번엔 정말 달라지지 않을까. LA에서는 24일 오전 9시 다운타운 6가 시청 인근에서 '생명을 위한' 집회가 시작된다.


신복례 / 외신담당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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