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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박물관을 가다] '버리지 못한 미련' 작품이 되다

할리우드에 4일 상설 개관
크로아티아 이어 세계 2번째
'깨진 사랑' 증표 100여점 전시



다 쓴 치약·남편의 향수 등
평범하지만 유일한 보물 전시
"지금 내 인연 소중함 깨닫길"


공간에는 감정들이 홍수처럼 밀려왔다. 설렘, 풋풋함, 따뜻함, 열정, 행복, 질투, 체념, 배신, 그리고 분노….

복잡한 경험이 담긴 '물건들'은 울거나 웃고, 고함치고 침묵했다. 물건은 과거에 속해있지만, 물건에 박제된 기억은 현재 진행형으로 여전히 아팠다.



14일 할리우드 한복판에 있는 실연박물관(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을 찾았다. 사랑을 잃은 이들이 그 애정의 증표로 받은 물건들을 전시하는 곳이다.

당초 박물관은 2006년 크로아티아에서 시작한 순회 전시였다. 현재까지 35개국을 돌면서 가는 곳마다 화제를 낳았다. 지난달 한국 제주에서도 열렸다. LA는 지난 4일 상설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크로아티아에 이어 세계 2번째다. 궁금증은 박물관 밖에서 이미 시작됐다. 동쪽 외벽에 '전 애인(ex)'이라는 단어 옆에 '도끼(Axe)' 사진을 크게 배치했다. 아만다 밴덴버그 부관장은 "같은 발음의 두 단어를 붙여 도끼로 자르고 싶을 정도로 끈질긴 미련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했다"고 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3500스퀘어피트(100평) 남짓 넓지 않은 공간이 자연채광으로 밝았다. 전시된 작품은 100여 점으로 '실연당한 이'들에게서 기부받았다.

여분 열쇠, 치어리더 유니폼, 다리미, 화병, 옷 등 전시품은 겉으로는 모두 일상의 물건들이다. 하지만 옆에 적힌 '안내문' 덕분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물이 된다. 안내문에는 전시물의 제목, 관계 지속 기간, 받은 장소 등이 쓰여있고 그 아래 기부자의 사연이 적혀있다. 글을 읽어 내려가면 자연스럽게 글쓴이의 감정에 공감하게 된다. "누구나 실연의 아픔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밴덴버그 부관장의 설명이다. 특별하지만 보편적이라는 사랑의 아이러니다.

예를 들면 쓰레기나 마찬가지인 '다 쓴 치약 튜브'가 그렇다. 기부자는 "같은 침대에서 아침에 눈을 떠 당신과 내 칫솔에 나란히 치약을 짜는 일은 내게 큰 행복이었다. 당신이 떠난 뒤 남은 치약을 난 차마 버리지 못했다. 내가 바보였다"고 썼다.

도로명 표지판도 눈에 띈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귄 나쁜 남자와 결혼했다가 헤어진 여성이 기부했다. "나와 싸운 뒤 그가 깜짝 선물을 했다. 내가 살던 동네에 가서 신호등에 붙은 도로 표지판을 떼왔다. 도로명은 내 이름이다."

하나밖에 없는 사연들은 계속된다. '눈물을 닦은 휴지처럼 꾹꾹 눌러' 병에 담은 웨딩 드레스, '부수고 싶지만 부술 수 없었던' 아름다운 모로코풍 화병, '수도 없이 버리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거울, '돌아오길 바라는 사랑'같은 부메랑….

선택이 아니었던 결별도 있다. 암으로 죽은 남편이 남긴 향수,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편의 청재킷 등이다.

보기 거북할 정도로 원초적인 작품도 전시했다. 남편의 설득으로 가슴 확대수술을 한 여성이 이혼 후 실리콘 보형물을 빼서 기증했다. "나보다 더 사랑했던 그를 위해 내 몸을 훼손했다.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하는 줄 그때는 몰랐다."

사연들은 날 것 그대로여서 잔상이 오래 남는다. 밴덴버그 부관장은 "가는 곳마다 전시가 성공적이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LA의 전시도 호응이 좋다. 불과 열흘 만에 200여 점의 기부 '작품'들이 답지했다.

밴덴버그 부관장은 헤어진 이들보다 오히려 현재 교제중인 연인들에게 와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했다. "깨진 사랑을 보면서 지금 내가 손잡고 있는 이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달을 수 있다."

박물관을 한 문장으로 정의해달라고 했다. "실연은 슬픔이나 상실만을 뜻하지 않는다. 많은 기부자들이 물건을 기증하고 나서야 '감정의 붕괴'를 극복했다고 했다. 미련을 보내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결국, 끝은 시작의 다른 말이라는 뜻이다."

박물관은 매일 오전 11시 문을 연다. 주소는 6751 Hollywood Blvd.▶문의:(323)892-1200/홈페이지(brokenships.la)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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