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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목계(木鷄)의 교훈

최선주
최선주 

[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5/17 19:36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되는 변화가 시간의 추이 따라 목격되듯이, 인간관계에서 보여지는 힘겨루기에 있어서도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갑이 되는 상황은 변화무쌍한 변수의 출현으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한 평생을 잘 사는 듯 싶은 사람도 가족 중 누군가가 평지풍파를 일으킬 때 그 바람턱에 서게 되면 혼란을 피해갈 수 없는 게 우리네 삶이다. 평지풍파는 보통 유치한 감정이나 탐욕, 이해타산에서 시작되는 것이기에 대화나 논리적인 설득은 거의가 무용하다.

아수라장에서 스스로를 다스리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사람은 크게 소인과 대인으로 구별된다. 작은 일에 마음을 쓰고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따라 심기가 자주 변하거나 변덕이 일어나는 것을 자제하지 못해 조석지변으로 마음이 요동치는 사람을 두고 소인배라고 부른다. 그에 반해 대인 즉 군자는 편당을 짓지 않고 두루 살펴 화평하게 지내며 도리를 알고 행하는 사람이다. 문제의 방지나 해결은 어떤 대책을 취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살면서 또 누구를 상대하느냐에 따른 내용이라고 하겠다.

고대 중국에서는 투계라고 하여 닭을 싸움시켜 승부를 가리는 경기가 인기가 있었다. 장자와 열자가 쓴 책에 목계지덕(木鷄之德)이 나오는데 이는 부드럽고 평안한 모습임에도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음을 뜻한다.

중국 기나라의 왕이 투계를 좋아하여 전문적으로 싸움닭을 길러내는 사람을 찾았다. 당시 투계 사육사로 기성자라는 사람이 유명하였는데 그에게 최고의 투계를 만들기 위해 질 좋은 싸움닭을 맡겼다. 맡긴지 한 열흘 지났을 때 왕이 훈련상태를 물었다. 기성자는 닭이 강하긴 하나 교만하고 자신이 최고인줄 아는지라 아직 멀었다고 답했다. 한 열흘이 더 지나 왕이 다시 묻자, 투계가 되려면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진중함이 최고인데,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 너무 쉽게 반응하므로 아직 멀었다고 답했다.

또 다시 한 열흘이 지난 후 왕이 묻자 아직도 멀었다고 답했다. 이유인즉 조급함은 없어졌으나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이라고 답했다. 다시 십여일이 지나 왕이 묻자 사육사는 그 모습이 마치 나무로 깎아놓은 닭과 같아 그 덕이 완전해져서 다른 닭들은 그 모습만 봐도 감히 공격을 못하고 도망갈 것이므로 드디어 되었다고 답했다.

가장 바람직한 싸움닭의 모습은 완전한 마음의 평정을 이루어 상대방이 아무리 도발적으로 소리를 질러도 무반응으로 눈빛 하나 변하지 않으므로 멀리서 보면 흡사 나무로 만든 닭처럼 침착함과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중하고 침착한 사람은 섣부른 공격이나 사소로운 일에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대범함과 인내심을 갖춘 사람이다. 투계 사육자 기성자가 이상적으로 삼은 목계처럼 주변의 잡음이나 위협에 영향을 받지 않고 평정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내공을 가진 사람만이 화평을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사서 삼경에서 말하는 대인이나 군자가 되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성경의 잠언에는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구하라고 권면하는데, 이어서 지혜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며 명철은 거룩하신 자 즉 예수를 아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각 가정은 지혜로 건축된다고 결론을 짓는다. 인생은 혼자만의 철학과 논리와 판단으로 살아가는 행로가 아니기에 뜻하지 않은 혼란과 잡음, 불의와 논쟁에 휘말리는 경우가 있게 된다. 특히 몰상식이 난무하는 자리에서 화평을 전하고 부동의 평강을 유지하는 사람으로 살고자 하면 마음의 중심에 신앙의 기본을 지키고 목계가 되기까지의 내공을 쌓아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지혜로운 자여야 화평을 전할 수 있고, 두루 덕을 끼칠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참지혜가 임한다. [종려나무 교회 목사,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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