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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저울질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이에게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질문이다. 물론 아침에 깨어나기도 전에 출근하여 밤늦게 들어와 무얼 먹었는지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뽀뽀를 강행하시는 분이 아빠라면 대답은 쉬워진다. 하지만 경쟁하듯이 눈을 부릅뜨고 아이의 반응을 살피는 부모의 얼굴이 아이에게 편하지만은 않은 모습일 것이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우리는 선택을 강요당했다. 모국에서 보낸 젊지도 않던 어린 시절에 배운 것은 온통 흑과 백, 선과 악처럼 뚜렷한 이분법의 가치관이었다. 흥부와 놀부, 콩쥐와 팥쥐 같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구분이 명확한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미국은 좋은 나라. 소련은 사악한 나라, 위정자들은 발이 여덟 개 달린 문어 같은 괴물로 표현되었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 헌법을 기본으로 한 자유롭고 가장 이상적인 개념이고, 공산주의는 몇몇 탐욕스러운 자들의 그럴듯한 거짓말과 눈속임으로 국민들을 현혹하는 개념이라고 배웠다. 소련의 공산주의가 미치는 미국의 기관에 대한 공포가 오십 년대 초 메카시즘(McCathyism)을 탄생시켰다. 공산주의의 활동이 미약하거나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도 공산주의 선봉자로 몰리면 정계에서 제거되었고 투옥되었다. 수백 명이 감옥에 갇히고 만 명도 넘는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좌절하였던 것이다. 애먼 동성애자들도 혐오의 대상에서 공산주의 선봉자로 둔갑을 하여 고통을 당하고 취업이 거부되었다.

이 치욕스럽고 혼란스럽던 미국 역사의 오점을 직수입한 나라가 모국인 대한민국이다. 오십 년대 초.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정권은 부패한 정부의 반대세력을 모두 용공이니 좌파로 몰아 처형하거나 감옥에 가두었다. 지금에야 정부의 조작된 더러운 정책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아직도 힘 있는 자들의 그 횡포가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해방된 조국이 둘로 갈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총선을 반대한 제주도 도민들은 이승만 정권을 인정 안 한다는 이유 하나로 참혹한 4.3 사건의 희생양이 되었다. 미군정은 경찰과 극우단체인 서북청년단을 파견, 6년간 3~4만 명을 학살하여 한라산을 피로 물들였다. 강대국들이 억지로 심어준 이념 때문에 벌어진 우리 민족의 비극이다.

탐욕스럽고 추악한 무리들은 두려움을 빌미로 장사를 한다. 자신들의 뜻에 어긋나면 무조건 좌파이고 용공세력인 것이다. 9.11 사태 이후 공항에서 신발 벗고 두 손 번쩍 들고 검사 받을 때마다 모욕감을 느낀다. 애국지심을 공포 분위기 안에서 강요당하는 찝찝한 기분이다. 가진 자들의 대변인이 되어버린 트럼프 행정부도 두려움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 멕시칸들은 흉악무도한 범죄자여서 벽을 설치하지 않으면 미국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선동하는 정책을 펼친다. 오직 다음 대선을 위하여 힘없는 모국의 운명을 쥐고 공기놀이 하듯 한다. 참담하고 속상한 일이다.



공자가 흠모한 주나라 주공의 사상 덕에 우리는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하도록 교육 받고 세뇌되었다. 완벽한 진실이란 신의 것이다. 인간 세상엔 절대적인 옳음도 온전히 그른 것도 없다. 오래 전, 서부영화를 보면서 미국 원주민들이 사랑하는 땅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것도 모르고 나쁜 족속들이니 다 죽었으면 하였다. 한쪽으로 치우친 저울질하던 어릴 적 내가 부끄럽다. 일억 넘게 살육 당한 그들에게 몹시 미안하다. 이제 편협된 저울질을 멈추고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방의 좋은 점과 현명함을 찾아보려 한다. 편견을 내려놓는 다소 힘겹고, 어색하고, 더딘 시작일지라도 말이다.


고성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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