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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순 칼럼] 광야에서 큰 나무로 커라!

지난 일요일 내가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고 정채봉 시인’의 시구를 인용하시며 자녀들을 놓아주라고 말씀하셨다. “광야로 내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다”는 이 짤막한 시는 오늘날 자녀를 과잉보호하며 로봇 다루듯 좌지우지하는 부모들을 향해 울리는 경종이 아닐까. 나 역시 말로만 외친다. 아이들을 놓아줘야 한다고. 아이들은 드넓은 광장에 나아가 혹독한 비바람과 이글거리는 폭염을 견뎌내야 큰다고. 귀한 자식일수록 세상 한가운데로 내보내 깨어지고 부서지며 고통의 용광로를 통과하여 진정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라고 말이다. 기실 설교를 듣는 내내 일침을 맞은 양 마음이 따끔거렸다. 은밀한 내 속내를 들킨 양 온몸에 소름이 돋은 연유가 다름 아니다.

상반기 내내 작은아들의 진로를 놓고 갈팡질팡했다. 녀석이 다가오는 8월에 로스쿨을 가는데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학교에 갈까, 이곳 조지아에 있는 학교에 갈까’ 결정을 못 내리고 몇 달 동안 고심을 했다. 그간 두 곳의 학교 탐방을 마치고 같은 길을 먼저 걷고 있는 여러 선배를 만나 정금 같은 조언도 많이 들었다. 어차피 아들의 인생이고 그의 인생 전부가 달린 만큼 큰 결정이니 이래라저래라 섣불리 조언할 수도 없었다. “큰길은 하늘이 정하고 작은 길은 인간이 계획한다고 했으니 하늘에 맡기고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그래서일까. 주일 날 목사님께서 들려주신 시 한 구절이 오롯이 뇌리에 콕 박혔다. 맞다. 아이들은 광야에서 비바람이 키운다. 놓아 주어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덩달아 작은아들을 광야로 내몰아야 한다는 생각이 달려들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스스로 결정하도록 가만히 놔두시라, 본인이 마음 가는 곳으로 가야 후회가 없다”던 남편이 밥을 먹다가 갑자기 녀석에게 물었다. 학교 어디로 갈지 결정했냐고? “이왕에 공부하는 거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해 보려고요. 졸업 후 조지아에서 일하고 싶으면 언제든 올 수도 있고요…” “그래 잘 생각했어.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오늘의 결정이 10년 후, 아니 인생 전체에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충분히 가늠했을까. 졸업 후 조지아에서 살고 싶으니 조지아에 있는 학교에 가겠다고 하더니 결국 낯선 곳에서 도전한다니! 녀석의 의미심장한 결정에 흔쾌히 동의하기까지 부끄럽게도 나는 세속적인 계산을 참 많이 했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변화에 저항하고 이기적으로 변한다더니 요즘 내가 그렇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아등바등 한 시절 살고 보니, ‘인생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가슴을 꽉꽉 메웠다. 그도 그럴 것이 낯선 땅에서 가족이라고 해봐야 고작 네 명, 여기저기 흩어져 살면 연중 몇 번이나 얼굴을 볼까. 작은 녀석이라도 조지아에서 함께 살기를 바랐다. 급기야 녀석을 꼬드겼다. 대도시로 갈수록 경쟁이 치열하니 삶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많다고, 욕심부리지 말고 물 흐르듯이 순조롭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애틀랜타가 무릉도원이라고, 회유했다. 내 안위를 위해서, 모든 가능성을 가슴에 품은 청년을 울타리에 머물도록 부추기는 건 어불성설이란 생각이 스멀스멀 가슴을 메우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다 큰 청년을 내 우산 아래 묶어두면 안 되겠다는 한 줄 깨달음에 놓아주기로 했다. “한 번뿐인 인생, 낯선 곳에서 마음껏 도전해 봐!”



종종 지인들이 자녀들의 진로를 놓고 걱정하면 단박에 ‘아이들은 밖에서 큰다’고 믿고 지켜보라고 야무진 조언을 했다. 엄마가 걱정하고 간섭한다고 작게 될 아이가 크게 되는 건 아니라고. 정답을 아는 양 자신만만했던 나! 정작, 내 아들의 진로 앞에서는 노심초사, 머리와 심장이 따로 놀았다. 광속으로 내달리는 세상, 경쟁의 도가니 속에서 살아남으려니 일찍 철들었을까. 디지털 세대인 요즘 아이들은 여러 면에서 부모보다 낫다. 일의 경중을 떠나 무엇이든 이리저리 비교 분석한 후 결정한다. 당장 녀석만 봐도 그랬다. 장학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겠다고 학교를 찾아가고 그것도 부족해 이메일을 몇차례나 보내고.

숲속의 무성한 풀을 헤치고 뚜벅뚜벅 새길을 내보겠다는 녀석을 믿고 조용히 지켜봐야겠다. ‘귀한 자식일수록 여행을 많이 보내’라고 하듯 귀한 자식일수록 광야로 보내 큰 나무가 되라고 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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