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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원 칼럼] 가을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가

지난 주말 축구장 옆 공원길을 지나다가 풀씨 하나가 투명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부유하는 것을 보았다. 시간조차 멈춘 듯, 아주 천천히 떨어지는 풀씨는 계절이 소리 없이 오고 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어느 새 회화나무 잎들은 대부분 떨어지고 성긴 나뭇가지 사이로 투명한 하늘이 펼쳐졌다. 지붕 위 자작나무도 며칠 전 불어 닥친 강풍 탓인지 제법 많은 잎들을 떨어뜨렸다. '가을의 장미' 화살나무는 가지 끝부터 조금씩 선홍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봄날 화려한 꽃을 피운 후 소리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라일락과 벚나무는 잎의 채도가 떨어졌을지언정 여전히 녹색이었다.

크랩 애플과 사과나무 잎들도 벌레가 파먹은 흔적은 있어도 단풍은 별반 눈에 띄지 않았다. 빨간색 꽃사과 열매를 열심히 쪼아대는 새들과 떨어진 사과를 입에 물고 ‘부지깽이도 덤벙이듯’ 오가는 스쿼럴은 가을 오후를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해마다 가장 늦게 단풍이 드는 배나무는 아예 청청한 초록이다. 수분은 얼마간 빠졌지만 도톰한 진초록 잎은 지난 여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을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가.

한글 사전에서는 가을을 입추부터 입동 전까지를 이른다고 규정한다. 올해는 8월 7일(입추)~11월 7일(입동)이니 어느 새 가을도 완연한 늦가을이다. 그러나 계절의 변화를 낮과 밤의 시간 길이를 기준으로 삼는 미국의 가을은 추분과 동지 사이다. 올해는 9월 22일~12월 21일이고 이 기준이라면 아직 미국의 가을은 절반도 지나지 않은 셈이다.

계절에 대한 규정이 지역과 문화에 따라 상이하듯 나이에 대한 관점도 시대와 상
황에 따라 달라진다.

예전엔 환갑이면 노인이었고 50대 중반에도 '중늙은이'를 자처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1980년대 시골에 가면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린 마을 어른들이 그 때는 정말 연세가 많은 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겨우 50대 후반, 60대였던 것 같다. 요즈음은 환갑을 노인의 기준으로 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외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랫말처럼 원숙미가 돋보이는 중장년층일 뿐이다.

사전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고 설명하는 노인의 기준은 무엇일까. 소셜 시큐리티 연금을 받게 되는 65세 무렵일까. 아니면 70세 혹은 80세? 정답이 없거나 모든 게 정답인 우문이다.

‘코리안 웨이’ 개척을 위해 히말라야 원정에 나섰던 한국 산악인 김창호(49) 대장이 지난 주말 구르자히말 지역에서 갑작스런 눈폭풍을 만나 대원, 셀파들과 함께 유명을 달리했다. 히말라야 8천미터급 14좌를 무산소, 무동력으로 완등한 세계적 산악인의 비극이다.

기자 초년병 시절 한때 산악 담당을 한 탓에 허영호, 엄홍길, 박영석 대장 등 산악인들과의 인연이 적지 않다. 이번에 사고를 당한 김창호 대장은 이들보다는 몇 년 후배여서 잘 알지 못 하지만 2선에서 후배들을 도와주는 게 일반적인 마흔 아홉의 세계적인 산악인이 새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직접 등반에 나섰다는 뒷 이야기는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산에 대한 그의 각별한 태도를 보면서 자칫 나태해지려는 나를 돌아본다.

인생의 가을날, 진초록으로 빛나는 배나무 잎이 될 것인가 바람 부는대로 몸을 맡기는 자작나무 메마른 잎이 될 것인가, 아니면 거리에 뒹구는 회화나무 이파리가 될 것인가.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새로운 도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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