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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봉의 미국에서 세자녀 키우기]

한미 비자 면제 프로그램

집 화장실을 리모델링 중이다. 원래 작년초 이사올 때 했어야 했는데 재정 형편상 미뤄뒀다 이제 겨우 시작했다.

견적을 내보니 작년에 받은 것보다 약간 더 올랐다. 재료값보다는 인건비 상승이 주요인이다. 전부터 공사를 맡겨온 한인 분인데 보조로 데리고 오는 사람은 몽골인들이다. 요새 안 그래도 일손 구하기가 어려운데다 젊은 한국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없다고 한다. 속칭 노가다라고 하는 단순 노동의 일당이 8시간 기준 하루 200달러를 넘어도 하겠다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1.5세나 2세를 제외하면 커뮤니티에서 접할 수 있는 1세 한인들은 가장 젊은 축이 40대다. 유학생들이야 학교 근처에선 꾸준하지만 학업이 아니라 생계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2, 30대는 언제부터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미국에 온 것은 2006년이다. 당시는 미국 경기가 고점을 찍고 지금처럼 일손 구하기가 어려웠을 때다. 이공계 전공자야 한국서도 수요가 많았지만 딱히 할 일 없는 인문계 대졸자들은 알음알음 소개를 받아 미국에 많이 건너왔다.



접시 닦으며 돈 모아 아메리칸드림을 이뤘다는 7080 시기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좋은 시절이었다. 별 기술도 없는 한국 젊은이들이 호프집 서빙 알바만 뛰어도 월 3천불 이상 가져갔다. 마음만 먹으면 투잡 쓰리잡을 뛰며 돈을 모을 수 있었고 고단한 가운데서도 눈이 맞아 가정을 꾸려 정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나가 캐쉬잡을 뛰며 주수입원이 되면 다른 하나는 월급은 적지만 신분 해결이 가능한 직장에 다니는 식이다.

생각해보면 다른 어떤 시기보다 미국에 정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이민국 단속이 심하지도 않았고 국무부에서 한국 대학생들을 상대로 인터뷰 면제 방문비자(B1/B2) 프로그램을 시행했으며 그게 없더라도 대충 어학원에 이름만 걸어놓으면 학생비자(F1/F2)가 나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대학생 때 받아놓은 방문비자로 시카고에 친구 보러 왔다가 덜컥 눌러앉게 됐다.

영주권을 받아 정착한 한인이라면 누구나 비자의 중요함을 잘 알고 있을 터다. 텍사스나 뉴멕시코 사막 등으로 몰래 밀입국한 서류미비자(undocumented)들은 신분을 바꿀 수 있는 길이 없다. 전임 레이건 대통령 때 마지막으로 사면한 이래 30년이 넘게 풀리지 않고 있다. 의회가 이민법을 바꾸지 않는 이상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반면 비자를 받아 합법적으로 들어오면 조건에 따라 신분 변경이 가능하다. 설사 시한을 넘기거나 해서 나중에 불법체류가 되는 경우라도 결혼 등으로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몇 개 있다. 그래서 방문 또는 학생비자로 들어와 있다가 한인 식당이나 소규모 회사에 직장을 구해 취업상태로 신분을 바꾸는 게 현실적인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할만 했다.

이게 가능했던 건 한미간 비자면제협정(VWP)이 없었기 때문이다. VWP로 들어오는 경우 미국내에서 신분 변경이 안 된다. 이를 고려해 비자를 신청하면 미 영사들은 면제프로그램이 있는데 뭐하러 굳이 받아야 하느냐며 엄격하게 심사한다. 예전처럼 대충 방문비자나 학생비자 받아서 들어오기가 굉장히 어려워졌다.

물론 신분 유지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겐 새로운 기회가 되기는 했다. 미주 한인언론들 기사를 검색해보면 비자면제 발효 후 소위 "나가요"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폭증하고 LA 등 등 한인 밀집 지역 풍속주점들의 경쟁이 격화됐다는 소식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학문적, 예술적 능력이 뛰어나거나 정식으로 유학한 이공계 고급두뇌가 아닌 이상 평범한 한국 젊은이가 미국에 정착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그래도 방법이 있었지만 비자면제 이후는 많이 어려워졌고 지금은 현정부의 이민제한정책으로 인해 더더욱 힘들어졌다.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미국 이주는 VWP 시작 시기를 기준으로 1-2년 전에서 정점을 찍은 뒤 시행 후 3년 정도 높게 유지돼다가 2014년부터 큰 폭으로 하락한다. 나는 이것을 발급된 비자가 만료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차로 해석한다. 한국의 청년 취업대란이 시한폭탄처럼 본격적인 근심의 대상이 된 것도 이 때와 맞물린다.

흔히들 악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고 한다. 아마추어리즘의 위험성을 경계하는 얘기인데 한미비자면제프로그램(VWP)도 이에 해당한다. 미대사관 앞에서 비자를 받기 위해 줄을 길 게 서지 않아도 돼 자존심은 세웠을지언정, 잉여노동력이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한국내에 주저앉아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사회 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

VWP는 지난 참여정부 때 시작돼 대부분의 협상과 조율이 끝났고 시행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직후의 일이다. 공교롭게도 참여정부의 뒤를 이은 한국의 현정부 역시 아마추어리즘과 현실을 도외시한 이념적 정책으로 경제는 물론 국방과 외교 거의 모든 분야에서 참담한 실패를 겪고 있는 중이다.

미국 주류사회에서 일자리를 얻고 동화되려 노력하지만 나 역시 아무래도 1세라 한인 커뮤니티가 더 친숙하고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커뮤니티가 앞으로도 계속 커가고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이고 또 그래야 내게도 도움이 된다. 식재료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다. 인구가 많이 늘어난 덕에 여러 한인 그로서리들이 경쟁하고 더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지 않은가.

모여야 커지고 모여야 효율적이 되며 모여야 힘을 갖게 된다. 시카고는 LA나 뉴욕 등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다른 대도시와 이민 역사가 달라 특히 더 그렇다. 다른 대도시들처럼 모여 살면서 상권을 키우고 그래서 사람이 더 모이고 상권이 더 커지는 선순환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젠 그나마 유입되던 비숙련 비전문직 한국 젊은이들마저 맥이 끊겼으니 예전 많은 이민자 커뮤니티가 그랬듯 점점 쇠락하다 수십년 뒤엔 주류 사회에 흡수되겠지 싶다.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관세사 ·그레인저 근무]



봉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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