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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현 문학칼럼: 심심하고 야생스러운 이민생활의 버팀목 - 책

저자의 고향 아이다호 주 Bucks Peak / 이미지 출처: Google Maps

저자의 고향 아이다호 주 Bucks Peak / 이미지 출처: Google Maps

워싱턴 주의 겨울은 하염없이 하얗게 날리는 눈발들로 인해 안그래도 심심한데 더욱 내 일상을 하얀 백지처럼 심심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 백지에 형형색색 신나고 즐거운 경험들로 채우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평소 영하 십도의 날씨를 견디는 것은 커피숍과 독서이다. 이 미국땅에서 영어를 한자라도 더 하려면 만고진리인 다독 다작 다상량을 해야 하는데, 일단 많이 읽어야 한다. 최근 읽고 있는 책은 타라 웨스트오버Tara Westover의 “Educated”다. 이 책에 대한 사전 지식은 없었다. 다만 서점가에 갈 때마다 몇 개월째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이 두꺼운 책이 늘 자리잡고 있었다. 도대체 뭐지? 나의 선입견과 편견이 가득한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Educated? 교육받음? 제목이 되게 단순한 거 아니야? 흠.... 무슨 내용일까? 혹시 제3세계에서 가난하고 힘들게 자란 유색인종 아이가 이 미국땅에 와서 교육 받아서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는 그런 아메리칸 드림 이야기?" 나의 선입견과 편견은 이렇게도 구닥다리, 낡고도 진부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서점가에서 일등 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다는 건 뭔가가 있다는 말 아닐까? 그 책을 보았을 때는 제목이 주는 내가 만든 선입견과 그 엄청난 두께 때문에 사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그냥 한번 들어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책 대신 오디블Audible 로 이 책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최대한 노력해서 다시 Kindle로 읽는 중이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오 마이 갓!' 세상에나 만상에나!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나는 이래서 메무아 Memoir 가 좋다. 실화. 저자가 직접 자신이 겪은 생생한 기억을 문장으로 적어 나간 것이 이 책이다. 논픽션, 실화는 가공되지 않았기에 그 이야기가 드라마틱 할수록 더욱 빠져든다. ‘아니, 정말 이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정말 이 책의 저자가 그런 삶을 살았다고?’ 이런 놀라움과 때로는 경악스러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로운 상황에서 저자가 빠져나올 수 있었던 동아줄 같은 형제 이야기를 읽을 때는 눈물이 났다. 또한 어찌보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회고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찌보면 자신의 가족 혹은 사적인 부분을 검열없이 보이는 용감함에 감탄하기도 했다.

절반 정도 읽은 지금까지의 감상은 미국의 다양함은 극한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어쩌면 ‘극도로’ 다양하다는 것이다. 내 또래로 보이는 이 저자는 담담하게 자신의 유년시절을 이야기 하는데, 우선 배경은 아이다호다. 책에서 묘사하는 바에 따르면 한국 강원도의 수십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땅과 산에 띄엄띄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시골 중에서도 '두메산골' 정도 되는 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저자. 그녀는 출생 신고 서류가 없다. 그녀의 형제 자매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으며, 홈스쿨이라고 말만 하고 대부분은 아버지의 노동일을 도우며 시간을 보냈다.

학교와 정부를 불신하는 아버지의 가치관으로 인해 저자는 보통 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신체의 일부를 조금이라도 보이는 것에 대해 매우 예민해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교회 무대에서 춤을 추기는 했지만 최대한 몸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춤 동작에도 한계를 스스로 그었다. 저자의 아버지는 20대 초반에 결혼하여 시간이 갈수록 점점 세상과 단절하는 삶을 산다.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운전 면허증 갱신을 하지 않는다. 세상 종말론을 믿고 99에서 00으로 해가 넘어가는 이천 년이 되면 세상이 망할 것이라는 말을 진심으로 믿는 아버지. 사실 나는 이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저자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유투브 검색을 했더니, 그녀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미국 백인 여성이다. 역시 사람은 겉으로는 판단 불가능하다. 저 사람의 과거가 어떠했는지, 스스로 말하지 않는 이상 판단할 수가 없다.

이야기의 힘은 강하다. 그 이야기가 희망의 빛으로 반짝거리는 결말을 가져오든 지하의 어둠 속에서 끝내 빛을 갖지 못하든, 기록으로서 이야기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한인 이민자들이 가진 이야기는 또 얼마나 다양할까? 얼른 다시 책으로 돌아가야겠다.




조소현
Brunch.co.kr/@joyloves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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