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 <267> 바르똘로메오 데 라스 까사스 신부1

인디오 멸절사와 흑인잔혹사 마지막 편에 백인 중 아주 드물게도 인디오의 인권을 위해 투쟁했던 라스 까사스라는 인물을 소개한다.

지금까지 봐오신 것 같이 백인들은 사람 같지 않은 인간들만 모였느냐? 꼭 그렇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은 인간도 다소 있기는 있었다. 에스빠냐 도미니크회의 신부이자 아메리카 최초의 선교사였으며 인디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일생을 보낸 라스까사스 신부의 스토리를 살펴보기로 하자.

라스까사스는 정복과 식민의 초창기에 스페인 정복자들과 엔꼬멘데로 (encomendero-대농장주)들이 인디오를 가혹하게 착취하고 학살하는 것을 보고 분연히 일어나 인디오의 인권을 옹호하고 그들을 보호하는데 일생을 바친 뛰어난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

라스까사스는 1484년 에스빠냐의 세비야에서 개종한 유태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라스까사스는 아홉 살 때 꼴론이 잡아온 인디오를 처음 보았고 라스 까사스의 아버지와 삼촌은 꼴론의 항해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제2차 항해에 참여했었는데 에스빠뇰라 섬에서 인디오를 한명 사로잡아서 에스빠냐의 가족에게 보냈다. 이렇게 라스까사스는 인디오를 옆에서 보고 자라서 그들에 대한 거부감이나 편견은커녕 동정심을 가지고 성장했다.



라스까사스는 사제 수업을 받던 중 이를 중단하고 18세 되던 해 아버지와 삼촌과 함께 지금의 쿠바(Cuba)지역인 서인도제도로 향한다. 그는 거기서 부친의 일을 돕고 원주민의 언어를 배우게 된다. 그 와중에 에스빠냐인들의 폭거를 자세히 보게돼 인디오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갖고 귀국한 라스 까사스는 신학을 계속하여 사제에 서품된다. 

라스까사스는 1566년 죽을 때까지 아메리카 문명이 에스빠냐에 의하여 식민화되는 과정에서 정복자들이 인디오들을 수탈하고 착취하고 학살하는 바로 그 현장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일생을 '정의를 위한 투쟁'으로 바친 인물이다.

▶문의:(213) 381-0041 www.martinspanishcollege@gmail.com

▶웹사이트:www.martinspanishcollege.com

백지원(언어학자/역사학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