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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아픈 손가락

"철퍼덕" 하는 소리가 들린 듯 했다. 아니다 "꽈당" 이었을 것이다. 콘크리트 바닥에 배를 깔고 널부러져서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었다. 이런 황당한 순간에도 엉뚱하게 넘어질 때 정말 어느 소리가 그때 상황에 어울릴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왼손은 땅을 짚고 있었는데 새끼손가락이 심하게 휘어져 보였다. 엉거주춤 앉은 채로 흩어진 식료품들을 비닐봉지에 담고는 오른손으로 자리를 이탈한 손가락을 흔들어 보았다. "우두둑" 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극심한 통증이 머리 꼭대기까지 전달되었다. 겨우 일어나 절뚝거리며 걸어 집에 도착했다.

검게 부풀어가는 손가락을 보고 아내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더니 서둘러 병원 갈 채비를 했다. 아침에 부랴부랴 병원에 도착하니 예약 손님들로 가득했다. 엑스레이를 찍으니 새끼손가락과 손바닥을 연결하는 뼈가 부러졌는데, 큰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손가락에 맞는 보조대가 없으니 월요일에 다시 오라고 한다. 난감한 마음에 집에 돌아와서 아이스 바 만들 때 쓰는 막대기에 테이프를 붙이고 붕대를 감아 손등에 고정시켰다. 한결 편해졌다.

나는 진통제를 웬만해선 먹지 않으므로 그냥 견디기로 했다. 붕대를 둘러 감고 일도 했다. 새끼손가락 하나 다쳤는데도 불편하다. 새삼스레 왼손잡이가 아닌 것이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 집은 형제자매가 다섯이다. 내 아래로 두 살 터울인 여자동생 말고는 다 아들들이다. 티격태격 하며 자라던 우리들을 어머니는 항상 다섯 손가락에 비유하셨다.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하셨다. 사춘기 때 "엄마는 말을 그렇게 하면서 왜 다른 손가락만 무는데!" 하며 대들면 어이가 없으셨는지 그냥 웃으셨다.



11월 마지막 날에 2018년 액땜한 것으로 치부하자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느껴지는 아픔이 즐거울 리가 없었다. 보는 사람들 마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대답하기도 귀찮아져서 술 마시고 넘어졌다고 둘러대었다. 맑은 정신에 급히 오느라 바닥에 움푹 파진 골을 못 보았다고 하는 것도 칠칠하지 못한 변명 아닌가. 다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뼈가 잘 아물고 있는지 엑스레이를 찍어 보았다. 다행히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잃어버리기 전에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는 노랫말처럼, 건강하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축복인지 그리고 당연하게 생각하던 모든 것들이 새삼스러워졌다. 참 오래 전 일이지만, 큰형은 부모의 첫사랑이라서, 둘째 형은 명석하고 착해서, 동생은 유일한 여자아이라서, 막내는 막내라서, 사랑 받고 보듬는다 믿었다. 어중간한 셋째로 태어난 것이 참으로 외로웠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대회에서 입상을 하는 바람에 중학교 때 비싼 미술공부도 시켜주신 기억이 난다. 공부도 형들만큼 못했고, 나약해서 신경쇠약에 걸렸던 내가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져 재수 학원에 다닐 때 부모님은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을까? 지나고 나니 나는 그냥 부모님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뛰어오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부서진 새끼손가락 같이 마음 쓰이고 애잔하고 더 안 다쳐서 고마운 존재였던 것이다.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앙상한 나무 위로 하얗게 뜬 해가 나를 비추었다. 따사롭고 눈부신 햇살에 잠시 멈추어 선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늘을 만드신 분에게도 나는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임이 틀림없다.


고성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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