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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이민역사를 쓴다] "2세들이 주인공 되도록 1세들이 밀어줘야" 심재길 전 뉴저지한인회장

뉴저지 한인사회 성장 이끈 1세대 원로
럿거스대 한글학과 지원에 힘 합쳐 나서
NJ경제인협회·NJ테니스협회 등도 창립

뉴저지주에서 한인사회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발전되기 시작한 시기는 1970년부터 1980년 사이다. 처음에는 뉴욕시 맨해튼 32가에서 사업을 하던 경제인들이 열차를 이용해 쉽게 오갈 수 있는 저지시티에 정착을 했지만 1980년대 초반부터는 포트리와 팰리세이즈파크 등 버겐카운티 지역이 각광을 받았다.

이 시기 뉴저지에 들어와 사업을 시작해 토대를 만들고 주요 단체장을 맡아 초기 한인사회 기틀을 잡은 1세대 원로들이 여럿 있다. 심재길 전 뉴저지한인회장도 그 중 한 명이다.

심 전 회장은 현재 200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통상 분야의 젊은 기업인들 육성에 힘쓰고 있는 뉴저지경제인협회도 창설해서 1대와 2대 회장을 맡았다. 또 뉴저지테니스협회를 창립해 한인사회 체육 진흥에도 큰 역할을 했다. 현재는 두 아들과 함께 파라무스와 알파인 두 곳에서 대형 음식점 기꾸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 미국에 온 것은 1970년 2월인데 초기에는 맨해튼에서 식당을 하다 1980년대 들어 뉴저지로 왔습니다. 현재 포트리에 있는 동방그릴 자리에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 때는 한인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현재 팰팍에서 그랜드가구점을 하고 있는 남완희 사장이 1980년대 중반쯤 사업을 시작하면서 저하고 만나 사업에 대해 의논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들어 온 다음에 5년 정도 지난 후에 남 사장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남 사장은 팰팍에 초기에 자리를 잡고 타운정부의 타민족과 한인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좋은 일을 많이 하면서 봉사했습니다. 또 내가 뉴저지한인회장을 맡아 일할 때도 많이 도와줬습니다."



심 전 회장은 레스토랑 사업에 매진하는 한편 한인사회 발전에 힘을 보태야겠다는 각오로 1980년대 후반에 뉴저지한인회 15대와 16대 이사장, 그리고 17대 회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에 참가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뉴저지에 여러 지역 한인회가 있었습니다. 뉴욕은 뉴욕한인회가 중심이 됐는데 뉴저지는 서부와 중부, 남부, 중앙, 애틀랜틱 등 5개 한인회에다 좀 나중에 북부뉴저지한인회가 만들어져 6개 한인회 체제로 운영됐습니다. 이후에 북부뉴저지한인회는 뉴저지한인회로 바뀌었습니다. 그 때는 뉴저지에 사는 한인들이 뉴욕한인회와 가까워서 뉴욕한인회장을 하곤 했습니다. 변종덕 전 회장, 조병창 전 회장 등이 그런 분들입니다."

심 전 회장은 뉴저지한인회 이사장과 회장을 맡으면서 당시 한인사회를 이끌던 이영빈 전 회장, 서의수 전 회장, 박동근 전 회장 등과 함께 럿거스대 한글학과 지원 사업 등 한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 향상시키는 사업에 합심 노력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까지 뉴저지한인회는 매년 6만 달러씩을 모금해서 럿거스대 한글학과 발전기금으로 지원했다.

"지금은 1년에 한글학과에 1000명 가까이 지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때는 우리가 도와줘야만 운영이 됐습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태권도를 하셨던 박동근 전 회장인데 다른 분들 모두 다 한 마음이 돼 열심히 돕고 사업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심 전 회장은 한글학교 지원 사업과 함께 기억에 남는 것은 뉴저지테니스협회를 창립하고 후원한 것이라고 말한다. 테니스협회는 한인회와 경제인협회 활동과는 다르게 2세 자녀들과 가족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각별히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당시 한인 가정의 2세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 오면 어디 갈 데도 없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부모들은 돈을 벌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잠자고 눈만 뜨면 나가야 했습니다. 청소년들이 땀도 흘리고 운동도 해야 되는데 이게 잘 안됐습니다. 또 당시에 아시안 테니스 선수인 마이클 챙이 메이저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해서 테니스 붐이 일었습니다. 지금 기억으로는 1988년 무렵인가 싶습니다. 테니스협회를 만들었더니 다들 좋아했습니다. 테니스는 가족들이 다 같이 즐길 수 있어서 참 좋은 운동입니다. 대회를 한 번 하면 펜실베이니아주나 뉴욕 등 여러 곳에서 와서 큰 대회를 했습니다. 대회에는 200명씩 참가해서 하루에 3게임씩을 하곤 했는데 지금은 활동도 더 활발하고 대회도 더 커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세들이 테니스 치는 게 보기 좋아서 3000달러짜리 트로피도 만들고, 5000달러씩 장학금도 만들어주고 했습니다. 나도 그 때 아이들과 함께 테니스를 치고 운동하다 햄버거 하나 코카콜라 하나 놓고 앉아서 점심을 먹던 때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추억과 정 때문에 아들들이 지금 부모 곁을 떠나지 않고 같이 사업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 추억을 이야기를 하면서 심 전 회장은 이제 앞으로는 2세들이 미국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자신과 같은 1세들은 뒤에서 밀어주고 후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동포들이 뉴저지한인회 등 동포단체들을 사랑하고 이를 잘 활용해서 한인사회 권익을 향상시키는 지혜로운 생각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람은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남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한인 2세들은 이 나라의 주인이 될 것이고, 1세들은 이미 끝나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2세들한테 넘겨줘야 합니다. 이제는 뉴저지에서도 선거에 나서는 한인 정치인들이 많이 나왔는데 한인회와 같은 단체나 추석잔치 같은 행사를 잘 활용하면 좋습니다. 미국 정치인들이나 실력 있는 사람들이 한인들하고 친구가 되려고 이런 단체나 행사 때 옵니다. 이런 것을 잘 활용해서 2세들이 나서서 잘하고, 1세들은 뒤에서 화합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2세들이 미국사회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1세로서는 참으로 보람된 일입니다."

심 전 회장은 자신이 일생을 통해 집중하고 일궈온 요식업 분야에 대해서도 후배들에게 해 줄 말이 있다며 조언을 한다. 요즘 K팝 선풍과 함께 한국음식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앞장 서서 활약할 요리사나 음식점 경영인 등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인 것이다.

"남들은 내가 큰 레스토랑을 두 개나 해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공의 비결은 돈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먼저 내가 지금 하는 일에 만족감과 즐거움을 갖고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잘해야 합니다. 저하고 같이 일하는 분들은 보통 20년, 30년 일한 분들입니다. 일 그만 둔다고 하면 왜 그만두냐고 물어보고, 다른 일 한다면 내가 될 일인지 안 될 일인지 봐주고 안되면 나하고 평생 같이 일하자고 합니다. 오늘도 하루를 살면서 남에게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돈은 내가 인생을 살면서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만큼 가지는 것입니다. 돈에 관심 끄고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한편 심 전 회장은 가정을 잘 일군 것으로도 주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은 명문대를 나온 뒤 각각 알파인과 파라무스 기꾸 레스토랑을 맡고 있다.


박종원 기자 park.jongwon@koreadailyn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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