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옥스퍼드대 로즈 장학생 만든 이용화양 어머니 이정용씨

"우수 학생 뒤에는 부모의 맹모삼천지교 반드시 있어"

어머니 이정용씨가 말하는 자녀 교육 노하우
1. 어려서부터 읽기, 쓰기 등 기초에 충실하라.
2. 노트 필기는 어느 참고서보다 우수한 것.
3. 자녀교육은 부모가 분위기를 이끌어 주는 것.
4. 지(智),덕(德),체(體)를 함양 하게 하라.
5. 음악교육 통해 정서 함양하라.
6. 자녀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의견을 존중하라.
7. 목표보다 과정이 중요한 것. 후회는 없다.


8. 자신은 소중한 존재. 순간에 충실하라.
9. 어머니와 아버지는 항상 대화의 상대.
10. 항상 칭찬하라.

요즘 이정용씨(50)는 만나는 사람마다, 한결 같은 질문을 받는다.
지난해 옥스퍼드대 로즈 장학생에 뽑힌 딸 이용화양을 어떻게 교육시켰느냐는 것이다.

"자라면서 단 한번도 공부 강요한 적 없고, 단지 읽기, 쓰기를 기초부터 단단히 해주었을 뿐 입니다"
의외로 대답은 간단하지만 이씨가 말하는 '자녀 교육'에는 분명한 노하우가 있었다.


● 읽기 쓰기를 가장 충실히 하라
장녀 용화양은 만 5살이 되던 해에 한글을 다 익혔다고 한다.

자연히 글을 알게 되면서부터 항상 동화책을 끼고 살았다.
읽기 어려우면 어머니인 이씨가 대신 읽어주더라도 항상 책을 가까이 하도록 했다.
또 읽기가 되면 바로 쓰기로 몰입했다.
일기를 매일 쓰게 했고 그럴 때 마다 자연히 작문 능력도 늘고 독서량도 늘어갔다.

초등학교때는 문체가 고운 동시를 읽게하고 반드시 외우게 했다.
훗날 미국 대학에서 에세이를 일필휘지로 내려 써 갈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이씨는 자녀의 방을 장난감대신 책으로 채워 놓고 읽고 싶을 때 언제든지 읽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책읽는 습관 만큼 정서적으로나 지적으로나 도움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용화양은 현대소설과 동서양 고전을 비롯, 과학 및 시사 잡지 등을 섭렵했다.

바로 이 부분이 용화양이 자신있게 에세이를 쓰는 기초가 됐다.


● "사교육 노", "학교교육 예스"
한국에서 그 흔한 과외도 안하고 고교 수석, 거기에 도미 3년여 만에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 입학 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어머니 이씨는 용화양과 동생 세화양에게 학과목 과외를 시킨 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자녀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교습을 시켰을 뿐이다.

그 흔한 영어 교습도 안했다.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 영어'를 '일상 생활 영어'로 활용하는 습관은 만들어 주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웃에 영국인이 살고 있었는데 용화양은 그집에 놀러가 매주 30분씩 영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교과서 영어'가 '실질 영어'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자연히 귀도 뚫고 말도 트이게 됐다.
자신의 능력을 영어로 표현하다보니 고급영어에 대한 갈망도 대단했다.
다소 이해가 안되더라고 '타임'과 같은 고급 영자 시사지를 읽게 되면서 '영어'와 '시사'을 한 번에 잡을 수 있게 됐다.


● 엄마와 함께한 미국 적응기
이용화양은 경남과학고 1학년때인 1998년 워싱턴주 우딘빌로 이주했다.

우딘빌 고교로 전학한 후 어머니 이씨는 딸과 함께 '미국 학교 학생'이 되기로 했다.
딸이 어느지역에서 어느 고등학교를 진학해야 대학입학에 도움이 될 수있을까 인터넷, 신문을 모조리 뒤졌다.
우등생을 그렇지 못한 학생과 함께 묻어놓는 한국식 교육과 달리, 미국고교는 학생 수준에 맞는 AP같은 프로그램이 무궁무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억척스런 어머니의 정보력 덕분에 용화양은 항상 우등생 그룹에 들 수 있었고 단 한시간도 허비 하지 않고 정진할 수 있었다.

"너희들만 공부 잘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뒤늦은 시기지만 어머니 이씨도 대학에 등록, 어렵게 회계학을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용화, 세화 자매는 고교 재학중 '시애틀 유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들어갈 정도로 음악에도 일가견이 있다.
또 이들은 어릴 때부터 갈고 닦은 음악실력을 '너싱 홈'같은 곳에서 노인들을 위해 발휘했다.


● 항상 리더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
이씨는 학교에서 과욕을 부르지 않는 범위내에서 '리더'가 될 것을 권유했다.
용화양은 우딘빌 고교에서 스터디 그룹을 구성하기도 했으며, 11학년때에는 현악 사중주팀을 만들기도 했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앞서 나가야 하기 때문에 '한국서 온 지 얼마 안되는' 이란 말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노력하고 또 준비해야 하는 습관이 저절로 만들어 졌다.

미국에서는 '공부 벌레'만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았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전해져야 미국 학생들 사이에서 '리더'가 된다는 것도 깨우쳐 주었다.

한국에서는 과학고에 진학 하기전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용화양이 학교에서 가장 성적이 부진한 학생을 맡아 학습지도를 해주는 등 '범상치 않은 모습'을 일찍이 보여주기도 했다.


● 지덕체를 겸하라
"내일 기말 고사가 있더라도, 오페라는 반드시 본다"
용화양은 부모로부터 학교 공부에 관한 한 '프리'를 선언했다.
그만큼 자기 관리에 충실했던 용화양이었기에 어머니 이씨는 걱정을 안했다.
용화양은 오페라 등 문화 활동에 유난히 관심을 보였다.
가족 전체가 시애틀 시향의 공연은 빼놓지 않고 보러 다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용화양은 내일 모레 시험기간이 온다고 해도 마음먹은 문화 공연을 빼놓지 않고 보는 '근성'을 지녔다.

'문화'에도 자신을 그만큼 투자하게 해준 것이다.
키가 5피트9인치인 용화양은 스포츠에도 만능이다.
고교 시절에도 항상 체력 관리를 위해 조깅을 거르지 않았으며 대학에 진학해서는 남자들도 하기 어려운 학교 조정팀의 메인 멤버로 활약하고 있다.


● 이용화 그는 누구인가.
지난해 11월 영국 최고 명문 옥스퍼드대에서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로즈 장학생’ 32명 중의 1명으로 선발된 매사추세츠공대(MIT) 4학년 학생.
이양은 한국에서 진주과학고 1학년 재학중 도미, 1998년 워싱턴주 우딘빌 고교에 편입한다.
11학년때 이미 모든 학과목을 이수하고 AP까지 마치는 기염을 토했다.
12학년 때는 세계 최고의 암센터인 '프레드 허치슨'에서 고교생으로는 최초로 인턴과정을 하는 영광을 얻었다.

도미한 지 3년 만에 MIT에 그것도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이양은 대학졸업 후 옥스퍼드에서 면역학 박사학위를 딴 뒤 의학을 더 공부하고 신경과학 분야에 공헌하고 싶다.

이양은 지난해 패션잡지 '글래머'의 '미국 최고 10대 여대생 2004'에 선정되기도 하는 등 공부, 운동, 사회활동의 ‘팔방미인’이다.

MIT에 재학하면서 온두라스 빈민여성 면역실태 조사 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 이용화양의 가족

이양의 '영원한 친구', 아버지 이한칠씨(53)는 대우조선에서 근무하다 바슬의 컴퓨터 회사, '키네시스 콥'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산대 조선공학과를 나온 그는 해군 학사장교 (OCS) 65기로 군복무를 했으며, 전공을 살려 대우조선에서 잠수함 등 선박관련 업무를 해왔다.
어머니 이정용씨는 대학 졸업후 한때 국어교사를 한 적이 있는 전형적인 가정주부.
용화양의 동생 세화양은 현재 워싱턴대(UW)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