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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커들의 꿈]웨스트 코스트 트레일<3>

윌브란 크릭 맨발로 건너니 불 나던 발이 ‘시원’

컬라이트계곡에서 크립스크릭까지(16km, 10시간)
세 째날 7월2일

윌브란 크릭 맨발로 건너니 불 나던 발이 ‘시원’
칼마나 등대 주변 원주민 부부가 햄버거 10불에 팔아


시간은 잘도 흐른다.


벌써 숲 속 생활 3일째, 이미 19km를 걸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10시간 정도 걸으면 다음 목적지일까 생각해본다.
8시 30분부터 걷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아침에 석기씨 지도로 피트니스 체조로 몸을 풀고 떠난다는 것이다.
옆에 있는 서양 애들이 더 신기해 하는듯하다.
우리는 단체로 모여서 하는 게 익숙한데. 어쨌든 몸풀기는 너무 좋다.
이건 꼭 해야 한다.
왜냐하면 너무 시원하니까.

걷기 좋은 날씨와 적당이 비추어 주는 햇살이 우리의 걸음을 경쾌하게 한다.
우리는 숲 속을 너무 빨리 빠져 나가고 있다.
이것은 역설이다.


숲을 즐기러 온 사람이 좋은 날씨로 빨리 재촉해서 나가고 있다.
2km를 걸었다.
엄청난 계곡이 나온다.
서스펜션 브리지가 시원하다.
사진을 찍지만 다리 밑이 불안해서 구암은 빨리 건너가버린다.
다리에서 바로 사다리를 오른다.
꽤 높다.
숨이 차오른다.
산길을 달린다.


바다길이 나온다.
그리고 또 울창한 숲을 만난다.
숲은 언제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우리를 맞이할지 모른다.
그 얼굴이 바뀌기 전에 우선 힘든 코스를 빠져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숲 속의 어둠이 밀려나가자 다시 우리는 등짐을 등에 메고 내려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어제 너무 무리를 했던가. 다리의 뻐근함이 한걸음마다 덜 펴진 날개같이 퍼덕거린다.
걷다가 잠시라도 쉴라치면 어디서 숨었다가 나타났는지 모기들이 먹거리를 찾아 날아든다.
모기약도 소용이 없더라. 여기저기 아무데나 쏘아댄다.
헌혈로 생각해볼까?

반팔셔츠 보다 긴 팔 셔츠를 입은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
자외선으로부터 또는 스침으로 보호도 되고 한다.
긴 팔 셔츠를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또한 숲 속 산행에서 워킹스틱이 효자 노릇을 하 는 줄 미처 몰랐다.
많은 사람들이 그 얘기를 많이 해서 샀지만 효용성을 이제야 느꼈다고 해야 하겠다.
걷는 동안 이것의 도움 없이는 다리가 견디지 못 했을 것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산길을 걷는 데는 절대로 필요한 것이었다.
무게를 균등하게 분산하여 안전한 산행을 도와주는 바로 그 역할.

아침엔 간간이 빗발이 내리더니 바람에 밀려났나 곧 다시 시야가 훤하게 트였다.
월브란크릭에 도달하자 때가 갈수기라 물이 별로여서 건너가기로 했다.
신 벗고 양말 벗고 신발끈을 함께 묶어 목에 걸고 한걸음 한 걸음 작은 돌멩이들을 밟고 건넜다.
물이 너무 차다.
오래 걸어서 불이 나던 발이 갑자기 시원해진다.


맨발 벗고 강을 건너는 재미도 그만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바닷길이다.
대략 51.5km에서 44.5km까지는 바닷길뿐이다.
이곳의 해안은 사암으로 되어 있어 걷기 쉽다.
사암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따개비들이 더욱 걷기 쉽게 한다.
수많은 인터타이달 풀 속에 살고 있는 무수한 생명들. 사람이 이곳의 가장 많은 침입자란다.
아무리 공원당국이 출입자를 일년에 8000명으로 제한한다 해도.

너무 예쁜 초록바닷말을 과소평가 했었나 그만 한발을 내딛는 순간 쭈-우욱 꽝! 미끄러지는 게 아닌가. 조심하고 신중해야겠다.
넘어져 손으로 바닥을 짚었는지 엉덩이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손바닥만 얼얼하다.


바닷가에 널려있는 이름 모르는 작은 해양생물들. 미역과 다시마 그리고 촘촘히 바위틈에 붙어있는 홍합의 군락을 볼 수 있었다.
산과는 달리 또 다른 작은 세계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석기님과 길동님은 화석을 발견을 했고 구석구석으로 숨어드는 작은 게들은 생명의 끈질김을 보여 준다고나 할까. 물이 나가버린 바닷가에 또 하나의 작은 세상이 있었다.


다시 사람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아차 싶었다.
어디라도 몸 한곳이라도 불편해진다면 어쩌나. 짧은 순간 남은 구간에 대한 걱정이 빠르게 머리 속으로 스친다.
다행이 배낭이 뒤로 받쳐주고 넘어진 자세가 좋아서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별 탈이 없었다.


간간이 내리던 비는 어느새 사리지고 저 멀리 보이는 머리는 빨갛고 몸은 하얀색의 등대가 눈에 들어온다.
칼마나의 등대다.


모래 위를 걷는데 여기 저기 동물들의 발자국들이 다른 해변보다 유난히도 많이 찍혀 있는 게 아닌가. 체즈 모니크(Chez Monique)가 앞에 보인다.
우리도 라면만으로 길들여진 배를 햄버거로 채우고 싶어 하는데 숲 속 동물들도 햄버거 집 앞을 어슬렁거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햄버거 한 개에 10불. 콜라 2불 맥주5불 맛나게 먹었다.
이곳에서 아침에 헤어진 영국인 가족을 다시 만났으며 작년의 태풍으로 비닐 집이 없어져 천막을 치고 장사를 하는 원주민 내외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다시 한번 삶의 괴로움을 엿볼 수 있었다.


등대 앞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과 툭 트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더라. 20년 이상 이곳에서 살아온 잘 생기고 인심 좋아 보이는 등대지기가 우리에게 망원경을 설치해주어서 바로 앞 널찍한 바위에서 오후의 한가로움을 즐기는 바다 사자 떼를 구경 할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등대지기 부인이 흰머리 독수리를 발견 하고 알려 주었다.
우연치고는 정말 복이 많은 우리였다.
망원경을 통해서였지만 대머리독수리(Haliaeetus leucocephalus)는 너무 생생한 경험이었다.
이 독수리는 미국의 국조이며 북아메리카에 널리 살고 있다.
머리의 깃털이 하얀색이라 대머리독수리라 하는데 실제로는 대머리가 아니다.
학명은 바다의 독수리라는 뜻과 흰머리를 의미한다.


시원한 바람을 뒤로하고 다시 산길로 접어드니 곰을 주의하라는 경고문을 볼 수 있었고 달콤한 산딸기 냄새가 아마도 곰을 유혹하는듯싶었다.
이 섬에 사는 모든 곰은 색에 관계없이 다 흑곰의 일종인 코모드곰이다.
흰색의 곰도 있다.
크립스크릭까지의 갈 길이 멀다.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크립스까지의 길은 지루하다.
단조롭다.
바다와 평행으로 달리는 오르락 내리는 산길은 별 특징이 없다.
간간이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다만이 답답함을 덜어준다고 할까. 드디어 캠프장이다.


작년 팀이 머물던 곳이란다.
넓은 곳이다.
전망 좋다.
개울 옆에 자리를 잡는다.
파도소리는 여전하고 우리는 매일 정해진 행사를 한다.
드디어 35km를 걸어왔다.
월브란크릭을 지나면 난코스는 다했단다.
여정은 순조롭다.


다소 아쉽지만. 모닥 불가에서 정담을 나누다 나는 다시 잠이 든다.
구암과 석기 그리고 길동은 계속 주절댄다.
무엇이 그리도 할말 이 많은지.

오정례=화이트락, 서광사 한글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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