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고난이라는 선물
잎사귀 흔들린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인다
고난이 네 안에 자라고 있어
심히 흔들린 후
나락으로 땅 위에 떨어지고
바람은 날 부축이고, 난 기대고
오래 뿌리 내리고
당신 품에서 당신 손길로
다시 세워지는 날
잎사귀 흔들린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인다
생명이 네 안에 자라고 있어(시카고 문인회장)
지난해 뒤뜰에 큰 나무 두 그루를 잘라냈다. 몇 년 전부터 듬성듬성 죽은 가지들이 보이더니 지난해 봄엔 잎사귀를 전혀 내지 않았다. 고민 끝에 사람을 불러 밑둥까지 나무를 베었다. 늘 든든히 제자리를 지키며 수고했던 나무들이었다. 사라진 곳이 휑해 자꾸 눈에 밟혔다. 지난 몇해동안 뒤돌아보면 잘려나간 나무들만 서 너 그루가 더 있고 폭설에 쓰러진 향나무도 3그루나 된다. 긴 가지가 부러진 나무들, 햇빛이 들지 않아 제대로 자라지 못한 묘목들도 있다. 정원의 나무와 꽃들은 몇해동안 바뀌어진 환경과 고난 속에 숨 죽이고 그 뿌리를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시카고엔 4월에도 눈이 내리고 추운 날이 많아 일찍 핀 꽃봉오리가 서리를 맞아 죽어나가기 일쑤이다. 완연한 봄이 찿아오는 5월이 되어서야 여기저기 꽃망울이 터진다. 식물이 자라는데 꼭 필요한 요소가 바로 양분과 물 그리고 햇빛이라고 한다. 올해는 많은 양의 토양을 덮어주었고 비도 자주 내렸다. 게다가 사라진 나무 사이로 많은 햇빛이 더해져서인 지 작년에 비해 꽃들이 많이 피었다. 강한 햇빛 때문인지 빛깔도 짙어졌다.
인생의 가치도 그렇다. 어려움과 고난의 캄캄한 터널을 지나본 적이 없는 사람은 행복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목놓아 울어본 사람만이 더 진한 색깔로 삶의 향기를 낼 수 있다. 글도 힘겹고 어려울 때 더 깊어지고, 노래도 간절할 때 감동을 준다. 우리의 하루도 힘겹고 서러울 때 더 절실해지고 성숙해진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별빛은 더욱 빛난다. 고통이 내게 선물이 될 때 비로소 자족이라는 행복 안에 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리스라고 불리우는 난도 봄에 평지에 피는 춘난보다 거친 바람을 맞으며 자란 풍란은 잎의 뻗음이 틀리다고 한다. 거친 바람을 견뎌내기 위해 더 곧아야 하고 꽃대궁도 더 굵어야 한다. 벼랑 끝에 핀 꽃일수록 짙고 향기롭고 아름답다. 벌과 나비를 모으기 위해 가장 화려한 색으로 가장 진하게 향기를 뿜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그 안에서의 싸움이다. 자기성장도, 생명도, 꽃도 자기와의 싸움이다. 움켜진 손에 힘을 빼고 버릴 줄 알게 된 것은 고난이 바로 나를 향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부터였다.
이전엔 더 힘을 주어 움켜쥐느라고 고통이 배가 되었었다. 고난은 나의 잔가지를 쳐내게 하고 무거움 짐을 내려 놓게 한다. 오히려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이 내게 불순물인지 자양분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
몸살을 앓고난 후 저마다 행복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정원은 다시 생기를 찿았다. 바라보고 있는 나의 얼굴도 함께 즐거워진다. 짙은 라일락 향기로 저물어가는 늦은 봄날은 고난이 주고 간 아름다운 선물로 색색으로 채색되어 가고 있다. 지금 뒷뜰은 꽃들의 노래로 한창이다.
신호철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