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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해태의 눈과 마음의 눈

눈이라고 다 보는 것일까. 집 앞 펑퍼짐한 잔디밭 위에는 뜨고도 보지 못하는 눈이 있다. 마스크를 쓴 이웃이 무례하게 울타리를 걷어찰 때도, 동네 개들이 찔끔찔끔 잔디밭에 소변을 뿌려대도,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집 앞에 세워진 해태상으로, 누군가가 던진 돌에 눈 부위가 깨져 있다.

전해오는 상상 속의 동물인 해태, 그 눈에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분하고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는 상상 속 동물의 눈이다.

깨진 해태의 눈을 더듬다 문득 나의 눈을 반추해 본다. 이웃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눈이었을까, 아니면 누리고 있는 행복에 감사할 줄 아는 눈이었던가. 혹 눈을 뜨고 있어도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고민하는 청맹과니는 아니었던가.

그것에는 온갖 표정들이 발가벗겨져 있는 것 같다. 예측할 수 없이 터지는 활화산 같기도 하고, 겨울 산같이 침묵을 지키며 무념무상의 경계로 삶을 관조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CCTV나 블랙박스에도 살아 움직이는 눈은 있다. 하지만 그것에는 사물을 꿰뚫어 가늠하고 판단하는 해태 눈의 정기가 빠진 것 같다.



사물의 실상을 꿰뚫어보는 해태의 눈은 삶의 곳곳에서 번뜩인다. 골동품의 진가를 밝혀내듯, 부동산 중개업자는 쓰러지는 집 속에서도 그 가치를 가늠하는 눈이 있어야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업가도 세상을 꿰뚫어보는 혜안이 있어야 그 분야에서 으뜸이 될 수 있다. 혼란의 세상에서 시대를 앞질러가는 눈과 사람들의 요구를 채워줄 기발한 아이디어가 성공의 지름길인 까닭이다. 이렇게 삶에서는 그 핵심을 파악해내는 총명한 눈, 사물을 꿰뚫어 밝혀보는 해태의 눈이 절실히 필요하리라.

주위를 보면 해태의 눈은 자연의 생명체에도 팔팔하게 살아있다. 그것은 자기의 실체를 파악하여 험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눈이다. 도마뱀이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의 꼬리를 자르며 사라지는 것이나, 위기에 처한 스컹크가 독한 냄새를 풍기며 도망가는 것은 생명체 속에 해태의 눈이 팔딱거리고 있기 때문 아닐까. 집 문 앞에 해태가 세워진 이유도 어쩌면 그 눈으로 내 보금자리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을 듯 싶다.

해태는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생존하니 그 나이가 몇 살이나 될까.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까지 이어지는 해태의 역사.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도 ‘해태 눈’의 진리는 언제나 살아있어, 생명체가 숨 쉬는 삶의 현장이라면 팔팔하게 살아나 자신의 소리를 내고 있다.

물에 사는 해태는 오행설에 맞춰 불을 막아주는 존재로 믿어 왔다. 그것이 모든 불을 막아 삶이 만든 가슴의 불조차 가라앉힐 수 있다면, 우리는 가슴마다에 해태 하나씩을 품고 살아야 할 듯도 싶다. 마음의 눈을 심안(心眼)이라고 했던가. 선과 악이 뒤바뀌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에서 천불이 나는 재앙이 끊이지 않는 세상, 내 가슴에 ‘해태의 눈’인 심안이 없다면 나는 어떻게 세간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김영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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