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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세상] 유상철만 울지 않았다

백종인 / 스포츠부장
백종인 / 스포츠부장 

[LA중앙일보] 발행 2019/11/27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11/26 19:06

한 달 전이다. K리그(한국 프로축구) 인천 경기 때다.

전광판 시계가 전반 6분을 가리켰다. 홈 팬들이 하나 둘 일어섰다. 원정 팀도 응원을 멈췄다. 이윽고 모두의 박수가 시작됐다. 골이 난 것도 아니다. 대단한 플레이도 없었다. 그라운드는 그냥 평범했다. 그런데도 갈채는 1분간 계속됐다.

6(분)은 현역시절 등번호다. 바로 홈 팀(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의 백넘버다. “유상철, 유상철….” 박수와 함께 연호가 가득했다. 관중석에 현수막도 걸렸다. ‘당신과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상대 팀은 수원 삼성이었다. 감독이 이임생이다. 유상철(48)과는 30년 절친이다.

선취점은 삼성이 냈다. 그런데 골 세리머니가 없었다. 잠깐 기뻐하려다 멈칫했다. 이임생 감독이 ‘그만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경기 전부터 당부가 있었다. “상대 팀이 힘든 일을 겪고 있다. 과한 세리머니는 삼가는 것이 좋겠다. 물론 경기에는 최선을 다하라. 그게 예의다.” (최종 스코어 1-1 무승부)

한참 후에 이유가 알려졌다. 한 매체와 인터뷰 내용이다.

“시작 전에 (유)상철이를 만났어요. 건강이 얼마나 안 좋으냐고 물었죠. 친구니까요. 돌아온 대답이 뭔지 아세요? ‘임생아, 나 이 나이에 지금 가야 되냐?’ 그거였어요. 그 말을 딱 듣는데(가슴) 여기서 뭔가 막 치밀어 오르더라고요. 아무 말도 못했어요. 그냥 끌어안고 울었죠.”

그날 이 감독은 세 번 울었다. 경기 전에 두 번, 끝난 뒤에 또 한 번이다.

당시만해도 쉬쉬했다. 건강 악화로만 알려졌다. 대외적인 투병 내용은 황달이었다. 여러 추측이 난무했다. 결국 사실을 알려야했다. 실제 병명은 췌장암이었다. 그것도 4기였다. 암 중에서도 가장 고약한 녀석이다. 진단 1년 내 사망률이 90%를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스티브 잡스, 루치아노 파바로티, 배우 김영애를 앗아간 악질이다.

병명이 알려진 며칠 뒤다. 지난 주말 인천 홈 경기였다. 초겨울 날씨가 쌀쌀했다. 게다가 비까지 추적거렸다.

게임 자체야 대단할 리 없다. 이미 우승권에서 멀어진 팀이다. 그런데도 1만1000명이 북적거렸다. 겨울비 따위는 아랑곳없었다. 우비 차림에, 때로는 맨몸으로. 모두가 한기와 맞섰다. 가장 뜨거운 함성을 쏟아냈다.

게임 전 감독(유상철)의 지시가 단호했다. “연민은 받고 싶지 않다. 감독이 아프다고 열심히 뛰어야한다는 생각은 1도(조금도) 하지 마라. 그런 것 지우고 경기만 집중하라. 너희는 프로다. 열심히 해야 할 단 하나 이유는 팬들 뿐이다.”

그의 팀은 절박했다. 1부 리그 생존이 걸렸다. 삐끗하면 2부로 추락이다. 허튼 감상 따위는 금물이다.

게임은 만만치 않았다. 상대(상무 상주)도 몸을 던졌다. 후반에야 승부가 갈렸다. 감독의 히든 카드가 통했다. 교체 멤버 문창진의 결승골이 터졌다. 유상철의 부임(5월) 후 처음이다. 홈 팬들에게 승리를 선사했다.

그들의 응원가가 울려퍼졌다. 그룹 부활의 ‘새벽’이다. 후렴구에서 목소리가 한껏 높아졌다. ‘♪ 우리가 살아온 날보다 내일이 더 길테니 ♬.’

여기저기서 훌쩍임이 시작됐다. 선수들도, 스태프도 마찬가지다. 빗물에, 눈물에…. 모두가 뒤범벅됐다.

울지 않은 사람은 유상철 뿐이다. “그래도 나는 낫다. 유명하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위로를 받는다. 훨씬 어려운 분들도 많을 것이다. 반드시 싸워서 이겨내겠다.”

그날 누군가 내건 플래카드였다. ‘유상철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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