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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고, 올리고, 때렸던…'원더우먼' 뭉쳤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배구 동메달 '여전사'
41년 만에 LA '눈물 상봉'
인생은 배구처럼 '원더풀'

1976년은 TV시리즈 '원더우먼'이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었다.

강력한 힘과 스피드. 하늘을 초고속으로 날 수 있고, 어떠한 총알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팔찌도 있었다.

그해 여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는 원더우먼의 힘과 스피드를 이어받은 대한민국의 여전사들이 나타났다. 세계 선수들과는 너무나 차이가 나는 열세의 신장과 기술이었음에도, 원더우먼처럼 붕붕 날랐고 그 팔찌처럼 총알 같은 공을 기가 막히게 막아냈다. 받아낸 공은 예술적인 토스로 이어졌고, 강력한 파워의 스파이크가 꽂혔다. 그해 대한민국은 TV에서, 원더우먼과 그에 맞먹는 코트의 원더우먼들을 보느냐고 정신이 없었다. 그 '원더우먼'들이 41년 만에 LA에 왔다. 그들에게 인생의 리시브(receive)와 토스(toss), 스파이크(spike)를 물었다.

14일 오전 11시 반 LA 한 아파트에 은발의 여사가 방문했다. 옆에는 60대 여성 두 명이 캐리어를 대신 끌고 따라 온다. 모두 키 170센티미터가 넘는 장신들이다. 부엌에서 요리하던 여성이 출입문으로 달려 나온다. "언니 그대로네요!" "너도 그대로네!" 눈물이 울컥 솟구친다. 41년만의 포옹이다.



그들은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올림픽 구기종목에서 메달을 따낸,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 배구팀 주역들이다. 재미한인배구협회를 응원하기 위해 전 국가대표 세터 유정혜의 LA집으로 한국에서 유경화와 박미금이 오고, 뒤늦게 고참 박인실이 버지니아에서 날아왔다. 스무 살이었던 막내 미금은 어느덧 60대.

이날은 실은 올림픽 목전에 팀을 탈퇴했던 수퍼 공격수 박인실과 재회하는 기쁜의 날이었다. 큰 언니 인실은 한국배구협회의 운영문제를 지적하며 돌연 팀을 떠났었다. '긴 세월에 언니는 어떻게 변했을까' 막내 미금은 손맛을 발휘해 열무김치와 깻잎을 담갔고, 유정혜와 유경화는 공항으로 마중 나가 짐꾼이 됐다. 인실은 혹여나 앙금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걱정했다. "올림픽 후, 사람들이 만약 내가 뛰었다면 은메달, 아니 금메달을 땄을 거라고 했거든요. 동메달에 그친 게 나 때문 아닌가 걱정했거든요."

시간은 흘렀다. 하지만 올림픽 여자배구 동메달의 영광은 깨지지 않고 역사가 됐다.

유정혜에게 배구는 '자신을 이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공격수에게 적재적소에 공을 토스하는 세터 유정혜는 1998년 가족들과 LA로 이민 왔다. 패션 관련 일을 하다 10여년 전부터 식재료 판매 사업을 하고 있다. 힘든 날이 올 때마다 그날의 경기영상을 CD로 계속 돌려본다. "그 당시에는 정말 가혹하게 훈련을 했거든요. 잠을 자고 있는데도 코치가 밤에서 깨워 훈련을 하기도 하고요. 이젠 알죠. 힘든 시간을 견뎌내면 분명히 희망이 있을 거라고요."

박인실에게 배구는 '인내'다. 그는 팀을 떠난 뒤 잠시 교사 생활을 하다 가족과 1979년도 미국에 이민 왔다. 잠시 부동산 중개업을 하다 시험을 치고 미 국방부에 들어갔다. 서울대 출신으로 해외 전지훈련을 갈 때 마다 영어와 관련된 잡무를 돕던 그였다. 하지만 주류사회는 그를 차별했다. 자신이 관리하던 국방부 소속 어린이집에서 어린이가 손찌검을 당했다며 학부모가 항의를 했다. 그런데 뜬금 없이 인실이 가해자로 지목됐다. 한국에서는 보통 있는 일이니 인실이 했을 거라는 거였다. 내부 조사까지 벌어졌고 억측인 것으로 끝났다. "제가 백인들의 상급자인 것이 못마땅 했었나 봐요. 저도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죠." 혹독한 훈련 시간이 떠올랐다.

"저도 참 힘들게 운동을 했어요. 그야말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운동했죠. 조금만 버티면 된다. 참자 참자, 배구는 저에게 인내를 가르쳐줬어요."

한국배구연맹에서 유소년 육성을 하고 있는 유경화, 박미금 선수에게 배구는 협동심이었고 배려였다. 결혼해서 시부모, 가족들을 모실 때도 상대를 챙기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야구는 홈런 한 방이면 득점이 되지만 배구는 아니잖아요. 공을 리시브하고 토스해주고…, 협동이 필수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배구 선수들은 더욱 끈끈해요."

파릇파릇했던 20대의 힘찬 영광은 60대의 노련한 애정으로 똘똘 뭉쳐있다.


황상호 기자 hwang.sa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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