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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누군가에게는 GPS였기를

새로운 곳을 갈 때는 길을 못 찾아 헤매기 일쑤다. 그런데 인터넷의 GPS를 쓰고 가면 방향은 물론 길 이름까지 말로 일러주는 희한한 세상에 사니까 나는 가능하면 그렇게 세팅하고 출발을 하려는데 우리 길 박사(안식구에게 수여한 길 전문가 타이틀)는 GPS가 더 어렵게 만든다며 출발부터 "여보, GPS 믿지 말고 가요!" 하며 잔소리꾼(Back-Seat Driver) 자리에 척 앉는다.

나는 GPS가 말하는 대로 따라가는데 길 박사는 옆에서 그 길은 아니니까 우회전을 하란다. 이러기를 두어 번 하면 그때부터 나는 헤매기 시작하며 선전포고가 선포된다. "여보, 운전은 내가 하는데 당신은 좀 가만히 있을 수 없소?" 길 박사 대답은 "당신이 헤매니까…." 소총, 수류탄, 장사포가 왔다 갔다 하고 나면 판문점 휴전선이 그어진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을 쫓으며 곁눈 안 팔고 살려고 하는데 그 길에도 갈등과 위선, 미움과 시기, 술수와 권모, 유혹 등 세상에 있는 것이 다른 언어와 옷차림으로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서 자주 헤매고 있다.

의학이 발달하여 의사가 모든 병에 약을 처방하여 주는데 '헤매지 않는 약'을 처방한다는 의사는 아직 못 만나봤다. 그래서 내가 믿는 장로 의사를 만나면 헤매지 않고 곧 바른길로 다닐 수 있는 약이 있는지 물어보아 처방을 받아먹으면 길 박사의 "당신이 헤매니까"라는 말은 안 하게 될 것 아닌가.



정말 헤매던 60년대 한국! 왜 그렇게 싫었는지. 꿈꾸던 미국을 2개월 된 아들, 4살 된 딸, 꽃처녀 같은 길 박사가 겁 없이 나만 쳐다보며 졸졸 따라나섰다.

김포공항 송영대를 메운 손짓과 눈물, 놓기 싫은 손, 어금니로 눈물을 머금던 그 사람들은 지금 어느 길목에서 헤매지나 않는지. 여권과 월부 비행기 표로 노스웨스트 항공을 타면서 은근히 자랑(?)하며 한국을 벗어난 것은 성공했는데 떠나는 그 시간부터 지금까지 그 많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 산하는 옛 모습 그대로 내 가슴에 남아있다.

은퇴하고 무료하면 더 헤맬 것 같아서 교도소 선교에 자원 봉사자로 참여하다 경상도 문경 촌놈이 2012년엔 출세(?)를 하여 교도소 교목까지 됐다. 그런데 좀 거북한 일이 생겼다. 때로는 장로, 선교사, 교목 중에 어떤 호칭을 써 불러야 하는가. 내가 몸담은 교회의 가까운 집사님은 영어가 쉬우니까 교도소에서 부르는 'Chaplain Peter'라고 부르니까 편한데 교회에서 지난 40년을 같이 살며 익숙하게 부르던 호칭을 바꾸기가 불편해하는 분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부르느냐가 무슨 큰 대수냐 말이다. 불려지는 격(格), 그런 삶을 살지도 못하는데 아무렇게나 부르면 어때.

어제는 연방 교도소에서 20년 자원봉사했다고 위로 점심을 풍성하게 대접받고 감사장과 재소자가 만든 팔찌 선물을 받으며 부끄러운 감사를 했다. 지금 나 하나부터 덜 헤매고, 남도 덜 헤매도록 정성을 다해 맡겨진 사역 하다가 그 날 GPS도, 길 박사도 담대하게 세상에 맡기고 갈 때 '그렇게 헤메더니, 바른 길 가네'라는 소리 들으며 웃으며 가고 싶다.


변성수 / 연방·카운티 교도소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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