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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스파에서 겪은 나라 망신

봄이 왔건만 나처럼 정신 나간 계절이 눈과 비를 매일 쏟아댄다. 나이 탓인지 삭신이 쑤시고 천근이라 몸 좀 풀려고 간만에 스파에 갔다. 여자 탈의실로 들어가는 순간 핸드폰 잡고 떠드는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반나체로 주변은 아랑곳없이 낄낄거리며 떠드는 소리에 초장부터 기분이 잡친다. 말을 못 알아들으면 더 시끄럽고 짜증 난다. 어느 나라 말이 이렇게 사람 귀를 후벼 파지. 공중도덕, 매너도 없는 삼류국가 인간 등등 나름대로 언어 분석과 죄 없는 국적 조사, 더불어 민족성 파악하느라고 한동안 괴로워 했다.

목욕탕이나 스파에서 아는 사람 만나면 최소한의 대화나 눈 인사만 하는 게 예의다. "혹시 누구 아니세요? 몇 번 뵌 것 같은데 남편, 애들, 강아지도 잘 계시나요?"라며 대화를 시작하면 정말 곤란하다. 나는 한국 사람 만날까 봐 꼭두새벽이나 밤늦게 아주 긴급할 때만 스파에 번개치기로 들린다.

민족은 오랜 세월 동안 일정한 지역에서 함께 살아 독특한 언어, 풍습, 문화, 역사를 가지게 된 공동체를 말한다. 민족이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인 데 비해 국민은 한 국가를 이루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미국 국적을 가진 나는 미국 국민이고 미국 시민 된 지 40년이 됐지만 까만 머리와 노르끼리한 내 피부 때문에 "어디서 왔어요"라는 질문을 매번 받는다. 40년이면 내 인생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오랜 세월을 미국 역사와 문화, 풍습에 익숙하게 살았건만 나는 여전히 한국인이라는 딱지 달고 민족적 정체성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산다.

한국 사람은 '빨리빨리'의 급한 성격, 다혈질, 강박감, 사대주의, 당파성, 일등주의, 졸부의식, 가치관 결여, 편견과 차별의식 등의 부정적인 점이 있지만 근면하고 성실하며 은근과 끈기, 열정이 있고 노력과 몰입, 속도감이 탁월하고 두레 품앗이 등으로 서로 돕는 단결력 또한 기막힌 민족이다.



약 2300년 전 공자의 7대손 공빈(孔斌)은 '동이열전(東夷列傳)'에서 "그 나라는 비록 크지만 남의 나라를 업신여기지 않고, 군대는 비록 강했지만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 풍속이 순후해서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먹는 이들이 먹을 것을 미루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섞이지 않으니, 이 나라야말로 동쪽에 있는 예의 바른 군자의 나라(東方禮儀之國)가 아니겠는가"라고 우리나라를 칭송했다. 1894년 영국의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은 눈부시게 하얀 옷을 입고 공 들여 빨래하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을 인상깊게 서술했다.

공공장소에서 반라로 떠드는 꼴 보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 추측해 민족성 운운하며 흉볼 처지가 못 된다. 민족성으로 꼬리표 단 한 인간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미움과 멸시, 차별의 근원이 된다. 나라 망신은 매너 없는 꼴뚜기가 시킨다. 평생을 미국에 살아도 딱지 못 뗄, '한국 사람' 이름표 달린 내 얼굴 보고 눈살 찌푸리는 사람 있는지 주변을 돌아볼 일이다.


이기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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