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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가운데서] 2020년 봄에 생긴 일

워싱턴DC에 사는 큰딸이 메이컨에 있는 작은딸네로 커다란 박스를 보냈다. 가족들이 둘러서서 박스를 여니 이것저것 한국산 간식거리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아이를 낳은 동생과 산후조리를 돕느라 이곳에 머무는 우리 부부에게 보낸 케어 패키지는 예상하지 못한 선물이었다.

딸들이 어렸을 적에 내가 용산에서 근무하느라 서울에 잠시 살았다. 그때 딸들은 한국산 오징어 땅콩 과자와 초코파이, 포도 ‘봉봉’을 좋아했었다. ‘식혜’ 캔들 사이에서 ‘봉봉’ 캔이 보이니 작은딸이 얼른 하나 집었다. 얼마나 반가웠을까 생각하니 내 마음이 짠했다. 남편을 배려해서 일본산 과자까지 골고루 챙긴 요술 박스 속에는 언젠가 내가 나 어릴 적 좋아했던 과자라고 말해준 쌀과자와 고구마 과자도 들어있었다. 쫄깃쫄깃하게 말린 감과 배 봉지들에 미숫가루와 여러 종류의 달콤한 먹거리를 모두 꺼내어 테이블 위에 펼치니 더러는 낯익고 더러는 낯선 참으로 다양했다. 산뜻한 한글이 적힌 과자 포장지에 눈과 마음이 행복해서 잠시지만 나는 동심이 되었다.

그동안 코로나바이러스가 일상을 꽉 조는 상황에서 식품점에 가도 하루 세끼 건강하게 챙겨서 먹는 데 필요한 식품에 집중했지 마음에 기쁨을 주는 아름다운 옛 추억을 되살리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더구나 예전에 좋아했던 과자 같은 것들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큰딸이 보낸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받고서야 나도 한발 물러서서 여유를 가지게 됐다. 특히 한국산 과자들은 맛을 보고 먹는 것이 아니라 추억의 맛으로 즐기는 것이 아닌가. 사실 큰딸 사는 곳에서는 한 시간 이상을 운전해서 버지니아 애난데일에 가야 한국 식품을 살 수 있다. 내가 딸 집에 머물 적에는 직장 일로 바쁜 딸과 사위를 귀찮게 하지 않고 그저 집 가까이 있는 식품점의 진열대에 몇 있는 동양 식품 재료를 대충 사서 사용했다. 특히 요리를 못 하는 딸과 한식을 즐기지 않는 사위 집에는 한식 재료들이 없다. 부엌은 사위의 영역이라 딸네는 한국식품점을 별로 찾지 않는다. 그러니 멀리 사는 가족들을 위해서 특별히 한국식품점을 찾아간 딸의 마음이 여간 대견하지 않다.

이렇게 손주들 보러 다니며 나 혼자 많은 복을 누리고 사는 것이 아직도 일하는 동생들에게 미안해서 딸에게서 온 케어 패키지를 자랑하지 못했는데 미시시피에 사는 여동생과 올케가 전화를 했다. 그들도 나처럼 각자 한국산 과자들이 담긴 박스를 받았다며 정이 많은 조카 때문에 가슴이 뭉클했고 행복하다고 했다. 살며 사랑하며 키운 아이는 누구네 자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식이다. 어려서 외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큰딸은 한국적인 정서를 가져서 남달리 정이 많고 어른들을 잘 챙길 줄 안다.



아무튼 2020년 봄은 정상이 아닌 상황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오랫동안 내가 버릇으로 치르는 습관을 지키지 못했어도 크게 아쉽지 않았다. 하루하루 감사하며 3월과 4월을 아주 단순하게 사는 동안 특별한 날이었던 부활절이 지나갔고 성당에 가지 않고 온라인 미사를 보는 것이 보통이 됐다. ‘스카이 이즈폴링’ 이란 동화책 속의 닭처럼 하늘이 무너진다고 소리치며 동동 뛰어다니지 않고 두문불출 잘하는 사이에 좋은 일들도 있었다.

가장 근사한 일은 건강한 손자를 본 일이다. 다시 한번 바보 할머니가 되어서 요즈음 아이를 안고 행복해서 비실비실 웃음을 흘린다. 그리고 친절한 이웃들과 문자로 안부를 물으면서 사랑 나누고 오랫동안 소식이 두절되었던 좋은 분들과 다시 연결되었고 그리운 옛 친구들과 느낌으로 자주 만났다. 언젠가 자유롭게 여행을 하게 되면 꼭 찾아가서 보리라 마음 다진다.

더불어 3월 중순에 미시시피 사는 동생이 잔뜩 가져다준 마스크를 딸들과 나이든 지인들과 나누었다. 모두의 마음에 조그만 안전감을 주도록 도운 동생에게 감사했다. 마스크를 쓰고 마음 편하게 외출하는데 올케가 마스크를 더 보내줬고 또한 미네소타주에 사는 큰 사돈네 딸이 직접 만든 마스크를 보내줘서 한동안 마스크 걱정 없이 든든하게 살게 됐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내 삶에 있어서 코로나 팬데믹은 나에게서 봄의 향기를 앗아가지 못했다.


영그레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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