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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원 칼럼] 연탄재

어린 시절, 눈이 내리면 연탄재를 찾아 나서곤 했다. 대문 밖 미끄러운 골목길에 연탄재를 고루 뿌려야 했다. 친구들과 함께 양 손에 연탄재를 들고 골목 끝, 시장통으로 향하는 언덕 초입까지 갔다 오는 일도 있었다. 밤 새 잘 탄 하얀 연탄재는 잘게 잘게 부서졌지만 이따금 덜 탄 연탄재는 석탄 가루가 덩어리째 떨어져 시커먼 얼룩을 만들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접할 때면 어린 시절 놀이 반, 생활 반이었던 눈 내리던 날 연탄 투하가 떠올랐다. 김소진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연탄재’로 질척거리는 시장거리와 교회 뒤편 좁은 골목길을 연상하며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곤 했다.

길고 긴 겨울 밤을 덥혀주던 연탄은 제 할 일을 다한 후에도 서민들의 일상에 적잖은 도움을 줬다. 매 겨울이면 연탄가스 중독 사고가 신문의 사회면에 심심찮게 등장했지만 연탄은 우리네 삶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따스한 존재였다.



설 연휴였던 지난 4일, 한국에서 윤한덕(51)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돌연사했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한국 응급의료시스템을 보완•발전시키기 위해 밤낮없이 애 쓰던 윤 센터장은 자신의 사무실 책상에 앉아 숨진 채로 발견됐다. 사인은 급성 심정지, 과로사로 추정된다.

그는 부와 명예가 보장된 자리 대신 응급의료 외길을 걸으면서 낙후된 한국 응급의료 발전에 온 힘을 쏟았다. 응급의료 전용 헬기와 권역 외상센터 도입, 국가 응급진료 정보망 도입 등은 그가 사무실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면서 일궈낸 성과였다.

연휴는 고사하고 퇴근도 없이 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를 대신할 사람이 없었고, 그만한 열정과 희생 정신을 가진 사람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은 추도사에서 윤 센터장을 그리스 신화 속,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거인 ‘아틀라스’(Atlas)에 비유하기도 했다.

시카고에 체감 기온 영하 50도라는 기록적 혹한이 몰아친 지난 달 하순. 시카고의 평범한 소시민 캔디스 페인(34•부동산 리얼터)은 추위를 피할 방법이 없는 노숙인 70여 명을 호텔로 옮기고 숙박비를 대신 지불했다. "남자 친구도 한 때 노숙인 생활을 했다"고 털어놓은 페인은 사우스룹 노숙인촌 프로판 가스 폭발 사고 소식을 듣고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페인의 선행을 알게 된 이들이 동참하면서 120여 명의 노숙인이 당초 예상보다 더 긴 닷새간 따뜻한 공간에 머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안위를 살피기에만 급급했던 많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세상은 언뜻 권력과 부, 명예를 가진 이들이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신문방송에 자주 오르내리는 감투 쓴 이들이 사회를 주도하는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겉보기엔 선행이나, 또다른 자기 과시인 경우가 종종 있다. 연탄이 제대로 타지 않으면 일산화탄소(CO)를 내뿜듯 외려 치명적이다.

실제 세상은 사람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 묵묵히 헌신하는 이들에 의해 바른 방향을 잡아왔다. 인간의 삶을 빛나게 하는 힘은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신실함, 외지고 작은 곳에서 시작되는 희생과 헌신, 조건없이 내주는 마음과 뜻에서 비롯된다.

여전히 추운 시카고의 겨울, 우린 누군가를 위해 한 번이라도 진실되게 뜨거운 사람이 되어 본 적이 있는가. <발행인>


노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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