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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어탕…'밑 구린 녀석' 으로 끓인 원조 보양식

이종호의 LA 음식열전 (2)
추어탕

추어탕은 옛날부터 원기 돋우는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았다. 위 사진은 구포집

추어탕은 옛날부터 원기 돋우는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았다. 위 사진은 구포집

남원골 추어탕.

남원골 추어탕.

추어탕은 미꾸라지로 끓이는 탕(湯)이다. 각 지방마다 끓이는 방법은 조금씩은 다르다. 경상도는 미꾸라지를 먼저 삶아 통째로 으깬 다음 배추 우거지나 무청 씨레기 등을 함께 넣어 끓인다. 전라도 추어탕은 경상도에 비해 국물이 탁하고 걸쭉하다. 이것저것 부속물이 많이 들어가고 된장이나 고추장을 풀어서일 것이다. 서울식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어 끓인다. 이름도 '추어탕'아 아니라 '추탕'이다. 하지만 요즘은 미디어와 교통의 발달로 전국이 단일 문화권이 되다시피 하면서 조리법이 뒤섞여 딱히 지방색 구분이 힘들어지는 느낌도 있다. LA서 만나는 추어탕도 그렇다.

구포집의 추어불고기. 탕과 달리짭 조름한 양념에 버무린 미꾸라지 자체의 쫄깃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구포집의 추어불고기. 탕과 달리짭 조름한 양념에 버무린 미꾸라지 자체의 쫄깃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추어탕에 대한 영양학적 예찬은 넘쳐난다. 대부분이 원재료인 미꾸라지에 대한 예찬이다. 우선 한방적인 접근. 허준의 동의보감에선 미꾸라지를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 속을 보하고 설사를 멈추게 한다"고 했다. 조선 고종 때 황필수가 편찬한 의서 방약합편에서는 "기를 더하고 주독을 풀며 목마름병(당뇨)을 다스리고 위를 따뜻하게 한다"고 적었다. 요즘 성업 중인 웬만한 추어탕집 벽에도 미꾸라지 좋다는 홍보 문구가 액자로 붙어 있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칼슘과 철분, 아연 등 무기질이 풍부하며 각종 비타민이 고루 들어 있어 원기를 북돋운다, 남성 정력 증강과 여성 미용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는 내용들이다. 종합하면 미꾸라지로 끓인 추어탕 한 그릇은 웬만한 보약 한 재보다 낫고 보신탕 부럽지 않은 원조 보양식이라는 얘기다.

어머니의 추어탕

#. 누구나 그러하듯이 음식은 추억을 만들고 추억은 그리움으로 남는다. 나도 추어탕 하면 아련한 기억들이 있다.



내가 자란 부산은 대도시이긴 했지만 1970년대 초까지도 변두리엔 여전히 논밭이 많았고 맑은 물도 흘렀다. 먹을 게 없던 아이들은 수시로 도랑이나 개울에 나가 시간을 보냈고 미꾸라지를 비롯해 자잘한 물고기도 잡았다. 특히 개울 바닥을 헤집고 미꾸라지를 집어 올릴 때는 녀석이 워낙 미끄러워 손에 쥐었다가도 놓치기 일쑤였다. 그래도 요령이 생겨 손아귀 힘을 적당히 조절해가며 용케도 잡아낼 줄 알았다. 그렇게 미꾸라지를 잡아오면 어머니는 "꼴랑 이기가?(겨우 이것이냐?)"라면서도 귀찮은 내색 않고 이것저것 함께 넣어 탕을 끓여내곤 하셨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머니는 잡아온 미꾸라지를 양푼에 넣고 굵은 소금을 적당히 뿌려 한참을 두었는데 처음 소금 뿌릴 때 요란하게 퍼더덕거리던 모습이 징그러우면서도 신기했다. 그러다 금세 동작이 잦아지고 나중에는 흰 거품과 함께 입 속 흙을 토해냈는데 어머니는 "이래야 흙내가 안 나는 기라"하셨다. 그 과정이 '해감하는' 것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러고는 텃밭에 자라던 억센 호박잎을 몇 장 끊어다가 쓱쓱 찢어 넣고 미꾸라지와 함께 싹싹 비볐는데 미끈거리는 점액질도 없애고 나중에 으깨기 쉬우라고 그렇게 하셨던 것 같다.

추어탕 조리와 관련된 기억은 거기까지다. 그 다음은 어머니 몫이었고 나는 다시 휑하니 밖으로 놀러 나갔기 때문이다. 동네 아이들과 어둑어둑해 질 때까지 놀고 있으면 어머니가 "조~오야, 밥 무~라"라며 몇 번씩이나 목청껏 불러야 겨우 들어왔는데 그렇게 집에 오면 아까 잡은 녀석들이 추어탕으로 변해 기다리고 있었다.

추어탕을 먹을 땐 항상 방아를 넣거나 초피가루를 뿌렸다. (어머니는 초피가루를 늘 '재피까리'라고 발음했다). 방아는 작은 깻잎 비슷하게 생겼는데 향이 독특하고 진해서 추어탕 말고도 된장국 같은데도 넣었다.

어머니의 추어탕은 요즘 식당에서처럼 마늘이나 풋고추 썬 것 같은 양념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고, 국물도 진하지 않았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별로 넣을 것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저 배추 우거지나 무청 시래기 같은 건더기만 있었지만 그래도 요즘 먹는 어떤 전문점 추어탕보다 맛있던 걸로 기억에 남아있다. 어릴 때 입맛이 평생 입맛을 결정한다고 한다. 나도 추어탕 하면 찌개처럼 뻑뻑한 것보다는 밥 말아먹기 좋은, 조금 묽고 슴슴한 국같은 것을 좋아한다. 초피가루도 가능한 한 듬뿍 넣는다. 그 강렬한 향 때문에 못 먹겠다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일부러 더 진한 향을 찾으니 정말 사람 입맛은 가지가지인 것 같다.

남원골과 구포집 추어탕

#. 미국에 살면서도 마음대로 추어탕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더구나 요즘은 한인마켓에 가면 냉동 포장된 추어탕도 여러 종류가 있어 집에서도 간편하게 조리해 먹을 수가 있다. 값도 싸고 맛도 웬만하다. 그래도 추어탕 하면 역시 잘 하는 식당 찾아가 땀방울 떨어뜨려가며 뜨끈하게 한 그릇 뚝딱 하는 맛이라야 제격이다. 내게는 LA한인타운에 있는 구포집과 남원골 두 곳이 그런 곳이다.

8가와 베렌도에 있는 구포집(3017 W. 8th St. LA)은 이름 그대로 부산식을 근간으로 하는 추어탕 집이다. 부추, 마늘, 다진 풋고추 양념에 들깨가루는 기본이고 오리지널 '재피가루'가 친근감을 더한다. 가끔은 어릴 때 즐겨먹던 방아를 따로 구비해 넣어주기도 해서 좋다. 전반적으로 깔끔, 담백한 맛이 특징. 밑반찬으로 나오는 콩나물 무침과 두부, 물김치도 맛깔스럽다.

피코길의 남원골(3623 W. Pico Blvd. LA)은 전라도식으로 국물이 좀 더 진하고 걸쭉한 게 차이다. 마늘, 썬 풋고추, 들깨가루 등 부속물은 구포집과 별 차이가 없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김치와 가자미 식혜가 별미다. 같은 이름으로 자바시장 상인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다운타운 분점(550 E. Olympic Bl. LA)도 있는데 아직 가보진 못했다.

두 집을 비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경상도식에 가까운 구포집이 내 입엔 더 맞다. 하지만 남원골은 오래된 만큼 유명하기도 해서 지인들이 많이 찾고, 덩달아 나도 자주 가는 편이다. 하지만 10년 전쯤과 달리 요즘은 갈수록 두 집의 맛 차이는 점점 없어져 간다는 느낌도 든다. 한국에서도 그렇듯 이곳 역시 구할 수 있는 재료가 가 비슷하고 고객 선호도도 비슷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맛도 닮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오렌지카운티 추어탕집

#. 워낙 추어탕을 좋아해서인지 2016~2017년 2년간 오렌지카운티에서 근무할 때도 자주 추어탕을 먹으러 갔다. 비치불러바드, 부에나파크와 가든그로브 사이에 있는 남원골추어탕(10332 Beach Blvd, Stanton)이 그곳이다. LA 남원골 분점인가 싶어 물어봤더니 지금은 이름만 그렇지 다른 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렌지카운티 가까운 세리토스 시골추어탕(16430 Norwalk Blvd. Cerritos)도 자주 들렀다. 이집은 주변에 오래 산 한인들에겐 꽤 유명한 집이라고 하는데 갈 때마다 그럴만 하다 싶었다.

하지만 입맛 까다로운 나로서는 두 집 모두 그저 추어탕 한 그릇 먹는다는 정도였지 매혹적인 전문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른 메뉴들을 이것저것 함께 취급하다보니 아무래도 추어탕 비중이 낮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바다 건너 미국 땅에서 그렇게라도 입맛을 달랠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싶어 고마운 마음으로 찾아 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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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나요
▶미꾸리와 미꾸라지


#. 요즘은 누구나 추어탕 재료 하면 으레 미꾸라지인 줄 안다. 하지만 원래는 미꾸리와 미꾸라지 두 종류였다. 둘 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민물고기다. 생긴 것도 생태도 비슷하다. 중학교 때 쯤 배운 생물 분류 단위 '문-강-목-과-속-종'에 따르면 둘 다 잉어목-기름종개과-미꾸리속이다. 하지만 그 아래 분류 단위인 종(種)은 엄연히 다르다.

미꾸리는 잎 가 수염이 짧고 몸통이 동그스럼하다. 반면 미꾸라지는 수염이 좀 더 길고 세로로 납작하다. 미꾸리는 주로 진흙 바닥에 살고 미꾸라지는 맑은 물에서도 잘 자란다. 다 자란 성체는 미꾸라지가 좀 더 크다. 외모로 구분하자면 '둥글이는 미꾸리, 납작이는 미꾸라지'라고 외워두면 쉽다. 원래 한반도엔 미꾸리가 더 많았다. 당연히 추어탕 재료도 미꾸리가 더 보편적이었다. 옛날 기록을 봐도 미꾸라지보다는 미꾸리가 훨씬 많이 등장한다. 음식인문학자 주영하의 '식탁 위의 한국사'에 따르면 1610년 경 쓰여진 동의보감에는 한자로 추어(鰍魚), 한글로는 '밋꾸리' 라고 표기되어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19세기 초에 지은 '임원경제지'에는 니추(泥鰍)라고 적고 한글로는 '밋구리'라고 썼다. 니추란 진흙 속에 사는 미꾸리라는 뜻이다.

어원도 재미있다. 보통은 워낙 미끌미끌해서 이름도 미꾸리나 미꾸라지가 되었거니 생각하지만 실은 생태적 특성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원로 생물학자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미꾸리나 미꾸라지는 모두 아가미 호흡을 하는데 물에 산소가 부족하면 이따금 물 위로 올라와 공기를 마신 뒤 항문 쪽으로 뽀글뽀글 공기방울을 뿜어낸다고 한다. 말하자면 방귀를 뀌는 것인데 그래서 '밑이 구린 녀석'이라는 의미로 '밑구리'가 되었고 이것이 밋구리→미꾸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맛도 미꾸리가 미꾸라지보다 더 구수하고 깊었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추어라는 이름 그대로 가을이 제철이기 때문에 자연산만으로는 사시사철 영업하는 그 많은 추어탕집 수요를 맞출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양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미꾸리보다는 미꾸라지가 더 빨리, 더 크게 자란다. 추어탕 재료가 미꾸리에서 미꾸라지로 역전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미국의 추어탕집에선 근교에서 직접 양식한 미꾸라지를 받아다 쓴다는 집도 있고, 마켓에서 사다 쓴다는 집도 있다. 하지만 추어탕 맛이야 비슷하니 믿기 힘든 원산지 따지기보다는 주인의 자부심과 정성을 살피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초피와 산초

#. 추어탕에 꼭 따라 나오는 것이 미꾸라지의 비린 맛을 없애주고 찬 성질을 중화시켜 준다는 초피가루다. 초피(椒皮)의 초는 산초, 고초, 후초 할 때의 초이고 피는 껍질을 의미한다. 보통은 산초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초피와 산초는 미꾸리와 미꾸라지가 다른 종류이듯 엄연히 다른 나무다.

초피는 가시가 많고 잎사귀 주변은 톱니처럼 생겼다. 나무 자체에서 나는 향도 산초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 초피나무의 열매 껍질을 갈아 만든 게 초피가루인데 맵싸하고 얼얼하며 강렬한 향이 난다. 부산에선 이것을 추어탕 말고도 물김치나 된장찌개에도 곧잘 넣어 먹었다. 우리 어머니는 어린 잎사귀를 따다 간장에 절여 밑반찬으로도 내놓기도 했다.

산초는 '난도'라고도 불렀는데 집 주변보다는 산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잎 모양은 초피와 비슷하지만 좀 더 매끈하고 녹색이 더 짙어 조금만 살펴도 쉽게 구분이 된다. 열매는 거의 향이 느껴지지 않는데 주로 기름을 짜서 약용으로 쓰인다.

초피가 매우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도 재미있다. 부산 경남에선 초피를 대부분 '재피'라고 불렀다. 그것 말고도 '제피' '젬피', 심지어 '죔피' '젠피'라고도 쓰는 경우도 보았다. 아마 웅얼거리듯 얼버무리는 경상도 발음의 모호성 때문에 이렇게 여러 가지로 뒤죽박죽이 된 게 아닌가 싶다.


이종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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