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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네팔 공주와 렛쌈 삐리리

히말라야의 품에 안기다 (22·마지막 회)

네팔 전통음식 달바트를 먹기 위해 저녁에 간 식당은 디너쇼를 함께 볼 수 있고 특별히 무대 바로 앞에 예약석이 준비되어 있다. 코스 요리로 커다란 놋쟁반에 둥근 밥 접시와 6개의 작은 놋그릇이 들어 있는데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닭고기, 야채 등이 차례로 그릇을 채운다. 그리고 무대에서 젊은 남녀가 전통의상을 입고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향신료 때문에 저녁을 포기하고 호텔에 누워 있을 CS를 보여 주려고 열심히 비디오를 찍어 댄다. 흥이 무르익을 즈음 무대위로 관객들을 초대하는데 갑자기 BS가 뛰어 올라 그들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아니 히말라야에서 무릎을 다쳐 헬리콥터까지 타고 내려 왔는데 이틀만에 다 나은건가? 얼마나 음악과 율동에 맞춰 잘 추는지 관람하는 우리 모두는 배꼽을 잡고 웃는다. 마지막 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BS에게 네팔 공주로 자리 매김해 주기로 했다.

네팔 민요인 렛쌈 삐리리는 한국의 아리랑과도 같은 민요인데 비단 손수건(렛쌈)을 흔든다(삐리리)는 뜻으로 BS는 오기 전부터 유튜브를 보고 노래와 춤을 연습했다고 하니 아마도 이날이 있을 줄 알았나보다. 네팔의 밤은 이렇게 웃음속에 저물어 가고 있었다.

5월 4일 새벽 4시 로비에 모여 공항으로 서둘러 출발한다. 공항 출입문은 너무 일러서인지 굳게 닫혀 있고 벌써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슬슬 새치기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화가 단단히 났다. 내 앞으로도 젊은 친구 둘이 슬쩍 끼어 든다. 저 뒤에 가서 줄을 서라고 했더니 친구가 이 근처에 있다면서 얼버무린다. 사람이 많아지면 질서는 순식간에 무너져 버린다. 문화니 예의니 하는 것도 사실 배부를 때 하는 얘기고 막상 앞을 다퉈야 할 순간이 오면 체면이고 뭐고 없다. 고성이 오가고 곧 싸움까지 날 기세다. BJ의 재치로 오전 6시 문이 열리자 마자 앞에 서 있는 경호원에게 몇 마디 하더니 우리 일행 모두를 줄과 상관없이 들여 보낸다. 그러자 우리 앞에 기다리던 다른 외국 여자가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항의한다. 난장판이 되어 가고 있는 입구를 벗어나 빨리 체크인을 하고 게이트로 들어간다. 그리고 보안 검사가 이어지고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하니 정신이 없다. 히말라야에서 심신을 단련시키고 왔는데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요즈음은 즐거워야 할 비행기 여행 자체가 극심한 보안 검사로 인해 고역이 되어 버렸다. 이스탄불에서 별 공지도 없이 모두 흩어져 쉬러 갔다. 뉴욕행 비행기는 오후 5시니까 앞으로 서너 시간 남은 것 같다. CS와 한쪽 빈 의자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DK로 부터 카톡이 왔다. '우린 225번 게이트에 있습니다.' BS가 커피 한 잔 하고 싶다고 해서 먼저 일어 났다. ST와 CS는 조금 있다 간다고 한다. 조금 남아 있던 전화 배터리가 메시지 받자 마자 아주 나가 버렸다. 그리고 이 한번의 메시지가 BS와 나를 땀나게 공항을 누비고 다니게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225번에 도착하니 텅 비어 있다. 머리 속이 순간 하얘진다. 아니 벌써 보딩이 끝났나? BS와 부리나케 뛰어 들어 갔다. 비행기 바로 입구에서 경비가 어디가냐고 막아선다. 그리고는 잘못 들어왔다고 하며 다시 밖으로 나가 security check를 하고 뉴욕행을 찾아 보란다. 등에 땀이 송송 맺히기 시작하고 BS도 당황하는 빛이 역력하다. 뛰었다. 이리로 저리로. 그리고 내리는 승객과 함께 security check를 하고 다시 로비로 나와 안내판을 살펴 보니 아뿔싸, 게이트가 700번으로 바뀌어 있는게 아닌가. 여기서 700번까지는 한참을 가야 한다. 기다리고 있을 일행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다. 그리고 CS와 ST는 어떻게 된건지 왜 안보이는지 궁금했다. 700번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고 진이 쏙 빠진 느낌이다. 또 다시 security check를 하고 비행기 좌석에 앉으니 아무 생각도 없다. 다시는 해외 여행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 나중에 전화를 충전해서 켜 보니 하나의 메시지가 더 와 있었다. '우린 보딩 대기중입니다. 700번에서.' 천당과 지옥은 한 끗 차이라더니 할 말을 잃는다.

역시 뉴욕은 제2의 고향이다. 내 집에 온 듯 푸근했다. 12일간의 히말라야 대장정을 끝내고 모두 부둥켜 안고 이별을 한다. 이번 산행을 인도한 대장 SS 그리고 그의 아내 BJ에게 모두를 대표해서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한다. 그리고…2018년 10월 12일 히말라야를 등반하던 김창호 대장을 포함한 한인 5명, 네팔인 세르파 4명이 산사태의 후폭풍으로 목숨을 잃는 불상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히말라야는 모든 산악인들의 로망이며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은 가 봐야 할 경이로운 곳이지만 언제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동안 함께 해준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coffeesarang@yahoo.com


정동협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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