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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열며] 한글 백일장

해마다 가을이 되면 우리 '미동부한인문인협회'에서는 한글로 쓰는 고교백일장을 열고있다. 지금은 퀸즈 지역과 뉴져지 지역의 한인 학생이 많은 몇몇 고등학교에서만 치러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미동부의 한인 학생들 누구나 원하면 참여할 수 있는 한글행사로 확대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번에 백일장에서는 세 가지의 주제가 주어졌다. '한글 사랑' '낙엽' '나의 가장 소중한 것' 등이다. 미리 예고 하지 않고 바로 주어지는 주제를 가지고 한 시간 내에 글을 쓴다는 것은 우리 기성 문인들에게도 쉽지 않다. 하물며 이 아이들에게는 더 어렵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글 쓸 종이를 나누어 주었다.

덩치는 이미 어른만하게 커졌으나 얼굴은 순진한 아이 그대로인지라 그들의 움직임은 앉으나 서나 소란스러운 소음으로 교실이 꽉찬다. 자신의 인포메이션(information)을 영어로 깔끔하게 써 놓고는 글의 서두를 시작하지 못해 서로 마주보고 연필을 굴리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충분히 이해한다' 라는 미소를 보내 주었다.

아이들 중에는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 또는 10년 이상을 미국에서 산 아이들, 혹은 북한에서 중국을 거쳐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되는 아이들, 한국에서 이미 한글을 다 배우고 미국에 온지 불과 몇 년 안 되는 아이들과, 몇몇 타인종 아이들도 섞여있었다. 그런 탓에 이런 아이들에게 한글로 글을 쓰는 백일장에 참여하여 한글 실력을 겨룬다는 것은 사실 공평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심사위원들은 아이들 각자의 미국 체류기간까지 고려하여 등위의 점수를 매기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들에게 문학성 높은 반듯한 글을 기대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타국에 살고 있지만 자랑스러운 우리의 언어와 글을 잊지 않도록 한글교육을 장려하고 한국인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점점 교실이 차분해지며 글을 짓는 진지한 아이들의 여백이 채워지고 있었다. 비록, 맞춤법이 나 띄어쓰기 등 문장의 문법은 정확하지 않으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많은 듯 했다. 생각하기 전에 행동부터 나가는, 때로는 거칠어 보이는 그만 때의 아이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늘 긴장하며 지켜봐야 하는 사춘기의 펄펄 끓는 아이들의 속내에는 오히려 철이 다 들어있는 것을 그들의 글을 통하여 읽을 수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가장 소중한 것으로 가족을 꼽았다. 부모의 고된 노동을 안쓰러워 하는 아이, 부모의 이혼으로 한국에 떨어져 있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리라 하는 아이도 있었다. 중국 할머니 집에 맡겨 놓은 자신을 미국에 데려오기 위해 5년 동안 일을 해서 그 비용을 만들어 미국으로 불러들인 엄마의 사랑을 글로 풀어놓은 아이도 있었다.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되는 낯선 이방인으로서 섞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물들지 못하는 나뭇잎'으로 비유한 어느 아이의 시가 내 마음 저 끝에 매달려있다.

삶은 그렇게 아프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 가득 뜨겁게 감동하게도 하는 것인가 보다. 건등 건등 보지 않는 듯이 다 보면서, 알면서도 모르는 체, 속으로 삭이며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꽉찬 속내를 백일장 심사를 하며 엿볼 수 있었다.

올해로 조선조 제4대 왕인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지 572주년이 된다.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원본)은 우리나라 국보 7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세계 80억 인구의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는 약 7000여 개나 되며 그로 인해 생성된 문자는 300여 개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모두 소멸되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문자는 한글을 포함해서 28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글은 가장 쉽고 과학적인 문자로 이미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요즘 K팝의 인기가 세계적으로 뜨겁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국 노래를 따라 부르며 그 뜻을 이해하고자 한글공부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한국의 위상이 높여지는 기분좋은 소식이다. 한편, 인터넷상에서 한글이 변질된 조합으로 축소되어 사용되어지는 언어파괴 현상은 심각한 걱정거리가 아닐수 없다.

우리 자녀들에게 한글과 한국어 교육은 우리의 뿌리를 알리는 중요한 교육이 된다. 세계 어디든 우리의 언어와 우리의 글이 있는 곳이 조국이며 한국인일 수 있는 것이다.


이경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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