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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그럴듯한 이름

예정일보다 보름이 지났는데도 나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의사가 자연분만하기가 힘들고 더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탯줄이 아이를 감겠다며 제왕절개로 낳았다. 그 병원에서 그 주에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이로 태어났다.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며 간호사가 아이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당황해 남편을 쳐다봤다. 한마디 말 없던 남편이 오래전부터 생각해 둔 이름이 있다며 "다인(茶仁), 어때?" 불교와 유교 냄새가 밴듯한 조용한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아이를 낳을 예정일이 다가오자 시아버지가 Hoover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후버가 뭐야. 너무 오래된 늙은 이름이잖아."

시아버지 본인 이름은 Harry, 그리고 큰 손녀 이름은 Helen, 장손은 Henry 다음 우리 아들이 Hoover다. 시아버지는 H자를 좋아하셨나? 아무튼 손주들 이름은 H로 통일하시기로 하셨는지 궁금했지만, 시아버지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미들네임으로 했다. 자라면서 아이는 후버라는 이름을 싫어했다.



남편 형 이름은 식(植), 남편 이름은 일(逸), 남동생 이름은 준(俊), 여동생 이름은 화(花) 그리고 막내 이름은 원(園)으로 모두 외자 이름이다. 집안 동산에 꽃과 뛰어난 인물 그리고 편안함을 심는다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남편은 어릴 적 가끔 들리던 먼 친척 할아버지가 멀쩡한 돌림자를 두고 왜 아이들 이름이 이 모양이냐고 투덜대시던 기억이 난단다.

얼마 전, 아이가 대만과 일본에 들러 한국을 방문했다. 아이를 낳을 때 우리 부부는 시민권자가 아니어서 아이는 이중국적이다. 한국에 가서 잘못되면 군대로 끌려갈 수가 있기 때문에 걱정했다. 영사관에 물어봤지만,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식이다. 아이는 만약 군대 가게 되면 장교로 잘 있다가 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신이 나서 갔다.

이민 생활 바닥을 치고 이제 슬금슬금 여기까지 온 우리 부부는 세상이 편해지고 느긋해져 간다. 아이들에게도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려고 14살부터 어려운 나라에 봉사를 보냈다. 다녀올 때마다 "엄마 나는 운이 좋아요." 세계에서 가장 크고 풍요로운 도시에 남자로 태어나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 행운이라며 자신의 처지에 만족했다. 그러니 한국에 가서 병무를 마친다고 해도 결코 나쁜 일만은 아니다.

인천공항 출국 심사 때 나이 든 공항 직원이 여권을 보더니, 큰소리로 '후버'하며 웃으면서 도장을 꽝 찍어줬단다. "엄마 나 이제 후버 이름 좋아요."

부르기 쉽고 마음에 드는 미국 이름 같으면서도 한국 이름 짓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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