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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코로나 시대의 가난한 화가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제자리에서 얼어버린 듯하다. 코로나19 이전에 예정됐던 오픈 스튜디오와 전시회가 미뤄지거나 취소됐다. 당분간 문화예술이라는 단어는 잘 접어서 장롱 깊이 넣어두는 분위기다.

가난한 예술가로 살아가는 나는 계속 그림만 그리면서 살아가는 게 맞을지 두렵다. 그러다가도 당연히 내 삶을 지탱해주는 그림을 그리고 살아가야지 다짐한다. 혼란스러운 시간이 반복된다. ‘가난하다’는 말에는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따라붙는다.

시간이 좀 지나면 코로나19가 잠잠해질 거라며 상황이 호전되길 학수고대했다. 그러나 감염자 수가 다시 늘어났다는 어두운 소식이 들리면서 다시 불안과 슬픔이 엄습했다. 역시나 그림을 보러 작업실로 찾아오겠다던 사람들은 각자 최소한의 거리를 지키느라 기약 없는 약속을 했다.

다행히 그림을 통해 내가 숨 쉬고 내가 살아났다. 그러나 코로나19와의 전쟁은 현실을 살아낼 일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한다. 이대로 무작정 기다릴 수가 없어서 이런저런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에 일간지에 시와 그림으로 3년여 공동작업을 해온 박미산 시인이 서울 서촌의 문화공간 ‘백석, 흰 당나귀’를 꾸려가는 일을 도와달라고 제안했다. 박 시인은 지인들에게 “서촌 시대를 열겠다"던 다짐을 실천하려 강의료로 임대료를 충당하며 4년 동안 이 공간을 힘겹게 지켜왔다.

나는 박 시인의 다짐과 약속에 담긴 의미를 짐작하기에 두 말없이 ‘설거지 알바’를 시작하기로 했다. 어쩌면 여러 크고 작은 관계와 상황들이 나의 이런 결정을 모두 지지하지 않음을 나도 안다. 우선 그림 그리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 당분간은 시도 때도 없이 밤을 새우며 그림을 그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설거지 알바비로 그림 재료를 사서 쉬는 날, 온종일 그림을 그리고 나면 "아! 내가 살아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문득 힘들고 지쳤을 때 그림은 나를 찾아와서 위로하고 지켜줬다. 나의 그 그림이 이번에는 코로나19의 최전선에서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간호사들을 찾아간다. 그 병원은 호스피스 완화 병동과 노인치매 병동, 노숙자 폐결핵 병동을 운영하는 곳이다. 가장 힘든 이들을 돌보는 그곳에서 나보다 더 고군분투하는 간호사들에게 ‘원은희의 그림 이야기’로 위로와 힐링을 주는 ‘안아줄게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 뉴욕 한인 라디오방송 진행자의 메일을 받고 왈칵 눈물이 나는 바람에 잠을 설쳤다. "코로나19로 아프고 힘들고 우울한 뉴욕 한인들을 좀 안아달라"고 해서다. 9년 차 화가는 오늘도 ‘백석, 흰 당나귀’로 설거지 알바를 간다. 길가의 덩굴장미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와 나를 안아줬다.


원은희 /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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