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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바이러스가 남긴 상처

류모니카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가끔 들르는 옷가게에서 문자가 왔다. 몇달 동안 코로나19로 가게를 닫아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더는 비즈니스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가게는 작아서 행정명령을 지키려면 한 번에 한 사람 밖에는 들일 수 없는 곳이다. 몇 안 되는 내 단골집 중의 하나였다.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단골 관계를 존중하며 집안을 꾸려가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가끔 ‘같은 물건이면 싸게 사려고 이곳저곳 찾아다니지 말고 늘 가던 가게에서 사거라’ 하셨다. 물건과 돈을 가운데 놓고 만들어지는 인간관계라 해도 단순한 거래를 넘어설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가르침은 구시대적일지도 모른다. 자식들이 있는 미국에 와서 말년을 보내고 이곳에 뼈를 묻으신 어머니도 할인판매의 관념에 익숙해지시기는 했다. 간혹 단골 관계를 만들 수 없는 미국이 편하지 못할 때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단골 의사, 단골 치과, 단골 여행사 등 단골이 된 이웃들과 친근히 지내셨으니 내게는 위로가 된다.

미국은 대기업, 대량생산, 할인판매의 국가다. 그 부작용으로 대량생산 회사를 이기기 어려운 중소업체들은 큰 기업에 합병되기 쉽다. 코로나19 경제제재는 인종차별 개선을 외치는 시위대와 신출귀몰하는 약탈자 그룹들의 만행과 맞물려 내 단골집 같은 작은 업체들을 벼랑 아래로 밀치고 있다. 대기업들은 그나마 살아남고, 간혹 더 많은 수익을 챙길 수도 있다.



오래전에 읽었던 ‘일회용 아메리칸(Disposable American)’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뉴욕타임스 기자였던 루이스 우치텔은 이 책에서 기업들의 합병으로 노동의 대가는 하락하고, 미국의 중산층은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접시들처럼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이렇게 변해 오고 있던 미국에 코로나19와 시위 등 사회적 동요는 중산층의 마지막 에너지까지 뺏어가고 있다.

특별히 옷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옷가게에 들렀다. 몇 개를 샀다. 그중 몇 개는 줄여야 했다. 늘 가는 단골 옷수선집이 있는데, 혹시나 전화를 해 보았다. 옷수선집도 비즈니스를 포기하고 그냥 은퇴하기로 했단다. 나는 그 옷수선집을 좋아했었다. 남편은 구두수선을 하고, 아내는 옷수선을 하면서 늘 겸손하고 즐겁게 살아가시는 부부의 업소였다. 나는 또 다른 단골집을 잃었다.

2020년에 잃은 것이 꽤 많다. 그중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코로나 최전선에서 순직한 사람들이다. 카이저 건강뉴스(KHN)와 영국의 가디언지는 ‘최전선에서 잃은 사람들’이라는 기사를 지난주에 보도했다. 순직한 의료계 종사자 700여 명의 이야기와 사진들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순직한 사람들은 모두 선한 눈으로 웃고 있었다. 28세 젊은 간호사, 연로한 70세 의사, 그리고 남겨진 어린 자식들의 이야기도 있다. 감염된 의사 남편이 부인과 함께 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연도 있다. 구급차 응급 테크니션, 병원 식당 직원 등도 희생을 당했다.

생명을 바쳐 순직한 분들의 명복을 빈다. 그분들의 남은 가족과 내 단골집 친구분들에게 힘내시라고 격려의 메시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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