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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도쿄 '보물지도'(타카치즈·Takachizu)로 난개발 막는다

"도시락 영수증·돌 조각도 보물"
사진·소장품·증언 모아 책 출간
지속가능 리틀도쿄 시민운동 일환
'소멸 위기 타운' 보전 공감 형성

"우리는 누굴까요? 우리가 사는 곳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지난 31일 해질 무렵 리틀도쿄 2가와 로스앤젤레스 스트리트 인근 한 건물 정문을 열고 들어섰다.

빈 건물이라 내부는 휑뎅그렁했지만, 그 한가운데서 열띤 토론이 한창이었다. 9살 소녀부터 82살 할머니까지 남녀노소 주민 50여 명이 간이 의자에 앉아 서로를 경청했다. 때론 심각했지만, 웃음소리도 터져나왔다.

이날 모임의 제목은 '리틀도쿄의 타카치즈(Takachizu)'다. 타카치즈는 보물(타카라.たから)과 지도(치즈.マップ)의 합성어로 우리말로는 '보물 지도'다.



즉, 리틀도쿄의 '보물 지도'를 만들기 위한 자리라는 뜻이다. 다소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렸지만, 참석한 주민들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행사의 중요성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임 주최 측은 2년전 리틀도쿄 주민들이 난개발을 막기 위해 조직한 범커뮤니티 협의체이자 동명의 캠페인 '지속가능한 리틀도쿄(SLT)'다. 소멸 위기의 리틀도쿄를 지키고, 100년 후의 타운 청사진을 그리는 '리틀도쿄 부흥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SLT의 크리스틴 후쿠시마 프로젝트 매니저는 "오늘 모임은 리틀도쿄의 문화 유산(cultural asset)을 기록하기 위한 신규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말하는 '보물'이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다. 리틀도쿄와 관련된 사진, 서류, 물건, 사연 등 나만의 추억들이다.

지난 22일 첫 모임 때 주민들이 제출한 보물들은 이렇다. 즐겨찾던 리틀도쿄 도시락 전문점 영수증, 80년대 회원제로 운영된 가라오케 동아리 모임 사진, 니시혼간지 사찰의 계단 돌 조각 등이다.

하찮아 보이는 것들이 난개발을 막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그들의 생각은 다르다. SLT 소속 비영리단체 리틀도쿄서비스센터(LTSC)의 마야 산토스(41)씨는 '가치'라는 단어를 썼다. 그는 "보물에는 버릴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음식, 거리, 건물 등 추억들이 난개발로 사라질 수 있다는 공감대를 커뮤니티내에 형성하자는 의도"라며 "개발사에 맞서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장 한 켠에는 그 기록들을 찍을 사진 촬영 공간, 음성녹음기, 스캐너 등이 마련됐다.

산토스씨는 "2월까지 행사를 연 뒤 3월에 보물들을 한데 모아 책으로 펴낸다"면서 "추억들이 남은 장소를 표시한 보물지도도 함께 제작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만드는 보물 지도는 리틀도쿄의 미래를 보전하기 위한 역사책이자, 유물이고, 행동 지침서인 셈이다.

참석자들은 보물을 유산으로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중미박물관의 큐레이터 스티브 웡(43)씨는 아들 로켓(11)과 딸 조이(9)를 데리고 왔다. 중국계 4세인 그는 리틀도쿄에 거주했고 일하고 있다. 이날 딸 조이는 쿠션 하나를 가슴에 안고 왔다. 웡씨는 "딸이 리틀도쿄의 유치원에 다녔는데 그때 교사와 같이 만든 쿠션"이라며 "딸이 소중한 물건을 보물 지도에 넣고 싶다고 해서 데려왔다"고 말했다.

빈 창고 같이 썰렁한 행사장이지만 모임의 장소 역시 이들에겐 보물이다. 이 건물 부지에 리틀도쿄의 오랜 숙원인 '부도칸(Budokan.무도관)'이 들어선다.

부도칸도 보물지도 제작과 마찬가지로 SLT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일본계 주민들에게 부도칸은 단순한 체육관이 아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재개발 때문에 기존 거주자들이 타지로 쫓겨나는 현상)'을 저지하는 물리적 방어선이자 커뮤니티 구심점이다. 그들은 이 부지를 얻기 위해 시정부를 40여 년간 설득했다. 내년 봄에 착공해 2018년 완공이 목표다.

후쿠시마 매니저는 "코리아타운은 리틀도쿄보다 면적, 인구 모든 면에서 훨씬 큰 공동체"라며 "주민들이 간직한 보물도 우리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커뮤니티의 보물은 주민들의 삶이고 애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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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성 없는 박물관은 생명 잃는다"

SLT 프로젝트 매니저
크리스틴 후쿠시마 인터뷰


“주민들을 모으고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SLT의 크리스틴 후쿠시마 프로젝트 매니저는 지난 2014년부터 시작해온 SLT 운동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했다.

-SLT가 무엇인가.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아이디어를 하나로 모아 공통의 목표를 만드는 것이다. 난개발 저지가 최우선 과제다.”

-소속된 단체는.
“30여 개 정도다. 리틀도쿄내 비영리단체는 거의 전부 힘을 모았다. 주도 단체는 LTSC와 리틀도쿄커뮤니티협의회(LTCC), 일미문화센터(JACCC) 3개다. LTSC가 지역개발, LTCC는 인권 운동, JACCC는 문화 예술 프로젝트로 각각 역할을 분담했다.”

-한인 사회에서는 단체간 연합이 어렵다.
“우리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2개 주도 단체간 갈등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 재개발로 리틀도쿄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코 앞의 현실에 정신을 차렸다. 싸움은 접어두고 더 큰 그림을 목표로 통합하는데 합의했다.”

-왜 주민들이 뭉쳐야 하나.
“정부와 개발업자들은 커뮤니티를 지배하고 나누려는 습성이 있다. 커뮤니티 내분이 길어질수록 그들이 우리를 점령하기 더 쉬워진다는 뜻이다.”

-우리도 한미박물관을 짓는다.
“알고 있다. 이웃 커뮤니티라서 우리도 주시하고 있다. 행운을 빈다.”

-건축형태를 아파트+박물관으로 바꿔 논란이다.
“지역 사회 프로젝트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반드시 주민들에게 먼저 공개하고 설명해야 한다. 박물관을 짓는데 투명성이 없으면 그 생명도 잃는다.


정구현 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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