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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철거하면 보상 없이 퇴거"

'전원식당'으로 본 난개발 현주소

20년 전 '불공정 계약서'에 묶여
한 푼도 못 받고 쫓겨나듯 퇴거
새 식당 찾기 '죽을 고생' 발품
듣고 싶은 말 "맛있게 먹었어요"


"바닥을 친 느낌입니다."

전원식당의 전용원(42) 사장은 지난 5개월간 깜깜한 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전원식당은 1994년 LA한인타운 내 8가와 베렌도 인근 몰에서 개업한 이래 2대째 한 장소에서 영업해온 장수 식당이다. LA타임스가 2011년 7월14일자에서 '환상적인(fantastic) 반찬 집'이라고 극찬했던 대표 맛집이기도 하다.



22년간 영업해온 터전을 잃은 것은 지난 4월이다. 입주한 건물이 재개발되면서 쫓겨나듯 짐을 싸야했다. 우여곡절 끝에 새 장소인 옴니플라자(414 S Western Ave)로 이전해 16일 다시 문을 연다.

내부 공사가 끝난 식당에서 그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전한 사연은 LA한인타운 난개발의 현주소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올라가고 있는 최신식 고층 건물 프로젝트의 이면에는 수많은 '전 사장'들의 눈물이 있다.

전원식당이 쫓겨나듯 퇴거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건물처럼 오래된 '계약 조항'에 있다.

"1994년 개업 당시 리스 계약을 할 때 '건물을 철거하거나 재개발하면 보상 없이 퇴거한다'는 조항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불공정 계약이지만 당시 첫 가게 장만의 꿈을 이룬 어머니는 '설마 건물을 부술까' 싶어 동의하셨죠,"

영어가 유창하지 못한 '을'의 이민자에게 건물주가 내민 계약서는 먼 얘기처럼 들릴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100만 달러에 식당을 사겠다는 제안도 있었어요. 계약서 상의 몇 줄 글 때문에 20여 년을 일군 '노포' 식당(맛있고 오래된 식당)을 한 푼도 못 받고 나와야 했던 거죠."

퇴거 후 봉착한 더 큰 문제는 새 보금자리였다. 주류 라이선스가 있는 비슷한 규모의 식당을 찾을 수 없었다. 매일 발품을 팔았지만 매물 자체가 거의 없었다. 어렵게 찾은 장소에서는 건물주가 바로 직전 업소에 보증선 사람의 서명까지 받아오라는 조건을 내거는 바람에 입주가 무산됐다.

"2개월간 시간만 버린 거죠. 종업원들에게 곧 다시 영업한다고 말했는데, 계약이 깨졌으니 더는 기다려달라고 못하겠더라고요."

장소를 잃고, 사람도 잃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이전할 장소를 찾은 뒤에는 돈이 문제였다. 보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으니 목돈을 구해야 했다.

손님들은 전원식당이 돈을 많이 번 식당이라고들 알고 있지만 말 못할 사정이 있었다. 전원식당도 2007년 모기지사태를 온몸으로 맞았다. "모아둔 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고스란히 포기해야 했어요. 다른 가게들처럼 우리도 매상이 60%까지 떨어지는 힘든 시기였어요. 모기지 페이먼트는 고사하고 종업원 월급도 주기 어려웠죠."

힘든 시기를 버텼다. 맛과 질이라는 식당 본질을 잊지 않았던 덕분이다. 2011년 LA타임스의 보도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사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위기 끝에 기회가 왔지만, 또 위기가 찾아오더라고요."

이번 퇴거 통보는 그에게 오히려 약이 됐다고 했다. 더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어서다.

"어머니 없이 혼자 경영한 지 8년이에요. 그동안은 다 연습이었고, 새 장소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이번의 위기 역시 그는 기회로 삼으려고 한다. 공격적인 경영을 결심했다. 전원식당의 프랜차이즈화를 구상중이다.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제안이 많다고 했다.

이전했지만, 바뀐 것은 없다. 7~8가지의 집밥같은 풍성한 반찬은 기본이다. 동태찌개, 은대구조림, 갈치조림 대표 메뉴도 그대로다. 그동안 개발한 묵은지돼지갈비, 굴파전을 새 메뉴로 추가했다.

쉬는 동안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물었다. "너무 맛있게 먹었다는 손님들 칭찬이에요. 그 말 한마디가 우리 식당을 맛있게 만드는 양념이거든요."


정구현 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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