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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냉철한 칼럼지면이 최고"

함경북도 피란민 출신
1980년 LA로 가족 이민
영어배우다 모델로 픽업
포드차 등 TV광고 찍어
'아시안 할머니'역 도맡아

파란색 스트라이프 스웨터에 흰 실크 스카프를 맨 멋쟁이 시니어 한 분이 중앙일보를 찾아왔다. '독자를 만나다' 두 번째 주인공인 정영희(영어명 모니카.83.사진)씨다. 여든을 넘긴 나이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젊어 보였지만 절뚝거리는 걸음에는 세월의 무게가 있었다.

4년 전부터 중앙일보를 구독해온 정씨는 "이민와서 큰 어려움 없이 아이들 잘 키우고 평범하게 살았다"며 인터뷰를 몇 번이나 사양했다. '평범한 독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손자뻘 기자의 애원에 만남이 이뤄졌다.

함경북도 피란민 출신인 정 씨는 46세 되던 1980년 남편 두 딸과 함께 LA로 이민왔다.

대부분의 한인들이 그렇듯 정씨도 영어에 얽힌 웃지 못할 기억들이 많다. 처음 이웃들이 "굿 모닝~"하고 아침 인사를 했지만 정씨는 이웃들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혼자 기어가는 목소리로 "굿…모닝" 했단다.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쑥스럽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영어공부에 시간을 쏟아 부었다. 부엌 선반에 영어 단어를 써 붙여놓고 설거지를 하며 보고 침대에 누워서도 하루 공부한 것을 머릿속으로 정리한 뒤 잠을 청했다.

"그때는 한국 방송도 없을 때니까 하루 종일 미국 라디오만 들었어요. 같은 뉴스를 계속 되풀이해서 들으니까 점점 이해도 되고 발음도 좋아졌어요."

두 딸도 공부하는 엄마를 보고 자라면서 한 명은 회계사 한 명은 교사로 탄탄한 길을 걷고 있다.

영어 공부는 요긴하게 쓰였다. 샌타모니카 칼리지에서 야간 수업을 청강하던 때다. 불법 주차 티켓을 2차례 받았다. 첫 번째 티켓이 엔진룸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티켓을 받은 줄도 몰랐다가 과태료를 물게 됐다. 억울한 항변을 메모지에 적어 법원에 가서 따졌고 티켓 2장 중 한 장만 벌금을 내도 된다는 판결을 끌어냈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대단하다고 하더라고요. 학교에서도 칭찬받았죠."

그 뒤 LA 세인트 빈센트 병원에서 무료 통역을 하며 한인들을 돕기도 했다.

영어 공부 덕분에 정씨는 TV 광고 모델로도 '픽업'됐다. 영어 실력을 키우려 산타모니카 인근 연기수업에 다니다 캐스팅됐다. 2000년부터 1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10여 편이 넘는 TV 광고를 찍은 '시니어 모델'로도 유명하다. 첫 출연작은 포드 자동차 밴 광고였고 한국 등 아시아 전역에 방영됐다. 이후 유명 팬케이크 프랜차이즈 식당인 '아이홉(IHOP)' 버드와이저 맥주 광고 등에도 출연했다. 인자한 '아시안 할머니' 역은 도맡다시피 했다.

"광고 에이전시 감독 앞에서 오디션을 보는데 많이 떨렸어요. 작은 종이에 대사를 적어 주는데 멋들어지게 표현했죠. 나이 많고 영어 할 줄 아는 아시안이 많지 않았으니까요.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광고봤다고 전화도 왔었죠."

모니카 정씨는 다른 한인 신문을 구독하다가 4년 전 중앙일보로 바꿨다. 중앙일보의 문화강좌 프로그램을 수강하다가 신문도 보게 됐다.

정씨가 가장 아끼는 면은 오피니언난이다. "필자들이 사회 비판을 부드러우면서도 냉철하게 하더라고요." 낮에 못 읽은 칼럼은 밤에 꼭 읽고 잔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와의 특별한 인연은 몇 년 전 중앙일보 앞 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피부로 느꼈단다. 라틴계 여성이 신호대기 중이던 정씨의 차량을 들이받았다. "놀라서 벌벌 떨고 있는데 중앙일보 직원들이 나와서 라틴계 운전자를 맞상대해줬어요. 제겐 참 고마운 신문이에요."


황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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