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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은 길을…잃고 누구나 한 번은 길을…만든다

[LA중앙일보] 발행 2017/06/10 미주판 3면 기사입력 2017/06/09 22:44

청주대 정기건씨 'PCT 종주'
국립공원 7개·국유림 25개 거쳐
총 2659 마일서 '나를 찾는다'

멕시코 접경지대인 샌디에이고 캠포(Campo)를 출발한 지 수십 일 째다. 온몸에 독기가 바짝 오른 방울뱀이 비릿한 소리를 내며 길목을 막고, 휴대전화 GPS는 '먹통'이다. 눈 위에 찍힌 곰발바닥 자국은 종주를 멈추라는 신호인가. 목은 타들어가고 땀은 마른다. '현실적으로 자격증이나 따는 게 현명한 게 아니겠어'라던 친구의 말이 맴돈다.

충청북도 청주대학교 정기건(24·사진)씨가 야심찬 도전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25일 캠포를 시작으로 미국 서부를 통과해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매닝공원까지 걸어갈 작정이다. 이 코스는 미국 3대 트레킹 코스 중 하나인 퍼시픽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PCT).

국유림 25개 국립공원 7개, 총 2659마일을 걸어야 한다. 지난 8일 기준 그가 서 있는 땅은, 샌프란시스코 동북 방향에 위치한 사우스 레이크타호. 73일째로 총 1092마일을 걸었다.

"대학 강의를 듣고 있는데… '내가 왜 이 강의를 듣고 있나, 내가 왜 학교를 다니고 있나' 전혀 모르겠던 거예요."

모든 길은 전인미답. 정씨 또한 트레킹 서적과 경험자의 블로그를 뒤져 정보를 모았지만 정작 현지에 오니 복병들이 있었다. 먼저 캘리포니아에 폭설이 수십 센티미터 쌓인 것이다. 눈은 길을 지워버렸다. 눈길을 헤치고 얼음을 깨며 걷느라 하루 이동 거리가 20마일에서 14마일로 줄었다. 등산화는 금방 젖어 무거워졌다. "신발을 지퍼백에 넣어 끈으로 묶은 뒤 걸었어요. 그래봤자 얼마안가 다 찢어졌지만…." 캘리포니아의 척추인 시에라 국유림에서는 몇 번이나 길을 잃고 죽을 뻔했다.

"3일 동안 길 잃고 '헬프 미'를 소리쳐도 나밖에 없는 거예요. 완전히 갇혔다는 생각에 혼자 욕하고 소리치고 발악했죠."

배움은 가볍게 들어와 무겁게 닻을 내렸다.

아스팔트를 뚫고 자란 잡초 무더기. 휴대용 정수기로 걸러먹던 탁한 계곡물, 바지 꿰맬 때 실이 되어준 선인장 이파리에서 보잘 것 없어 보이던 것들의 가치를 배웠다. 특히 히치하이킹 문화가 인상적이었다. 주민들은 먼저 나서서 여행자를 도왔다. "한 백인 부부는 돈과 명함까지 주며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하라고 했어요. 마지막 포옹이 얼마나 따듯한지."

'아웃도어 사마리안'이라 불리는 '트레일 엔젤(Trail Angel)'은 구원자였다. PCT 종주를 돕는 작은 시민모임인 트레일 엔젤은 시원한 물과 맥주, 오렌지를 담은 아이스박스를 사막 한가운데 두고 사라졌다.

"히치하이킹 문화가 신기했어요. 장을 보고 마트를 서성이면 누군가 태워줄까 물어 봐주고, 마을과 트레일을 오갈 때 흔쾌히 차를 태워줬죠. 오랜 친구처럼 환대 했어요."

산에서 내려와 마시는 초코우유는 세상 가장 달았다. 꿀 같은 시간. 7, 8일 만에 찾아오는 재정비 시간 때면 숙소에서 대형 피자 한 판에다 과일 한 접시 여러 간식을 혼자 해치웠다. 어쩌다 예상보다 빨리 걸어 일정이 하루 앞당겨지면 한 끼를 보너스로 더 먹을 수 있다. 여기다 정씨가 만든 특제 '위맥' 한 잔. 캠핑용 플라스틱 그릇에다 위스키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것이다.

"여행을 하며 인생의 방향과 직업적인 목표를 생각하려고 왔는데, 생각이 잘 나지 않아요. 머리가 비었어요."

목적지 캐나다 매닝파크에 9월 8일까지 도착할 예정이다. 석 달은 가야한다. 길에는 어떤 위험이 똬리를 틀고 있을까.

두렵지 않다. 길을 잃어야, 길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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