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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일흔다섯, 대륙횡단을 꿈꾸다

간호자격증 취득 40년 전 이민
공장서 납땜하다 요양원 취직
은퇴후 여행·본지 기고 소일
"마음 실어준 중앙일보에 감사"

LA북쪽 도시 글렌데일의 작은 집을 찾았다. 말끔히 정돈된 소박한 정원에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이 책을 보며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윤춘자(75) 할머니는 간호사 출신이다. 35년 동안 LA의 일본계 커뮤니티 요양원에서 일하다 3년 전 은퇴했다. 집에는 이름 모를 꽃과 레몬이 익어가고 있었다.

윤 할머니가 미국에 첫발을 디딘 건 꼭 40년 전이다. 약사 부친 밑에 자라며 서울 소재 약학 대학을 다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어머니는 새벽녘 시장에 나가 좌판을 열고 과일과 생선을 팔았다. 무허가였기에 시시때때 경찰은 좌판을 걷어냈다. 딸은 경찰에 끌려가는 어머니를 맥없이 지켜봐야 했다.

"나라는 어렵고 희망이 없었어요. 그런데 간호사가 되면 미국에서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무지개 같은 희망이었어요."

대구 모 간호전문대학에서 간호사 자격증을 딴 윤 할머니는 시카고에 잠시 머물다 일자리를 구하러 LA로 넘어왔다. 처음 시작한 일은 납땜질. 비행기 부품을 만드는 일본계 전자회사에 취직해 머리카락 굵기의 전선을 막대 같은 부속에다 붙였다.



기회는 엉뚱하게 찾아왔다. 잘못 배달되어온 일본계 신문에 간호사 모집 광고가 나 있었다. 그렇게 취업한 일본계 커뮤니티 요양원에서만 35년 동안 일했다. 일본의 문화는 한국과 많이 달라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공과 사가 '면도날'처럼 시퍼렇다. 사무실 복사기를 쓸 때도 업무용이 아니면 장당 10센트씩 꼭 내놓고 썼다.

"일본인들은 철저해요. 출근카드를 1분만 늦게 찍어도 15분을 제하거든요. 그래서 직원들은 출근 15분 전에 체크 기계 앞에 서서 기다렸어요."

그는 '글 좀 쓰는' 간호사다. 2000년 6월 말 없이 피고 지는 분꽃을 보면서 느낀 울림을 써서 본지 오피니언난에 처음 투고했다. 그 뒤 10여 년 동안 여행하며 느낀 감동 부잣집을 방문했다가 느낀 격차감 교계에서 벌어지는 갈등 등 40여 편의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했다. 친절한 한인 세탁소 부부에 대해서는 '한 쌍의 찻잔' 같다는 멋들어진 비유와 함께 '즐거움을 다려주는 세탁소'라는 시적인 이름을 지어주었다.

"사실 우리 세대는 마음을 발표할 곳이 없어요. 중앙일보는 늘 독자의 이야기를 지면에 잘 실어줘서 고마웠죠."

그의 마지막 꿈은 미 대륙 일주다. LA에서 캐나다 밴쿠버까지 대 여섯 번 다녀올 정도로 운전을 좋아한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거실에 붙은 지도를 보며 여행의 밑그림을 짜고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저는 유서를 써놓고 나가요. 집 현관을 나서는 순간 이게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출발해요."

그 여행기가 중앙일보에 실리는 날을 기대해 본다.


황상호 기자 hwang.sa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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